📌 해신당 전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신남마을에서 바위섬에 미역을 따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처녀 애랑이의 원혼을 달래려고, 마을 사람들이 애바위가 보이는 산끝에 애랑신을 모시고 향나무로 깎은 남근목을 바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신제는 지금도 정월대보름과 시월 첫 오(午)일에 지냅니다(디지털삼척문화대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고] 이 글은 김포에 신당을 둔 퇴마전문 무당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님의 광고 의뢰로 신이말했다 운영진이 작성했습니다. 해신당 전설과 해신제 내용은 디지털삼척문화대전 「신남마을 해서낭과 남근 봉헌」·「해신당생태공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해신당」·「사혼제」 항목에 실린 것만 옮겼습니다. 상담료와 굿 비용, 손님 후기는 공개 자료로 확인되지 않아 적지 않았습니다.
해신당 전설은 '처녀귀신'이라는 말이 어떻게 마을 신앙이 되었는지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무당, 신점, 점집 이야기를 지역별로 정리해 온 신이말했다가 이번에는 동해안 삼척으로 가서, 원한을 품은 넋을 쫓아내지 않고 신으로 모셔 달랜 마을의 선택을 기록 그대로 따라가 봅니다. 처녀귀신 손각시가 무엇인지 먼저 알고 싶다면 손각시 뜻 정리 글을 함께 보셔도 좋습니다.
이미지: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광고주 배너 (광고주 제공)
해신당 전설 줄거리 — 애바위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애랑이
해신당 입구 비석에 새겨진 마을의 대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옛날 신남마을에 장래를 약속한 처녀 애랑이와 총각 덕배가 살았습니다. 어느 봄날 애랑이가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 간다고 하자, 덕배는 떼배로 애랑이를 섬에 데려다주고 밭일을 하러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더니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 배를 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랑이는 살려 달라고 덕배를 부르며 바위를 붙잡고 애쓰다 결국 파도에 쓸려 숨졌습니다. 디지털삼척문화대전 「해신당생태공원」 항목은 그 바위섬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있다고 적고, 처녀가 애를 쓰다 죽었다 하여 이 이야기를 애바위 전설이라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공원 항목에는 조금 다른 갈래도 실려 있습니다. 봄 가뭄으로 마을이 배를 곯던 때였고, 덕배는 한낮이 되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는 대목이 덧붙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전하는 사람에 따라 세부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처녀의 원혼이 마을을 괴롭힌다고 믿은 까닭
애랑이가 죽은 뒤 그 바다에서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고 배 사고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재앙을 바위를 붙잡고 애쓰다 죽은 애랑이의 원혼 탓으로 여겼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동쪽 바위섬을 향해 고사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고기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 믿음은 한국 무속의 귀신관과 그대로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혼제」 항목은 결혼하지 못한 처녀귀신과 미혼으로 죽은 몽달귀신이 한을 풀려고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다는 속설이 예부터 전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처녀를 모신 각시당이 있었고, 주민들이 당을 짓고 제를 올려 그 한을 달랬다는 것입니다.
같은 항목은 그 대표적인 예로 바로 삼척 신남리 해신당을 듭니다. 원귀를 칼이나 주문으로 쫓아내는 퇴마가 아니라, 신으로 높여 모시고 대접하는 방식으로 원한을 풀었다는 점이 해신당 전설의 핵심입니다.
남근목을 바치게 된 사연 — 어부의 화풀이가 바꾼 것
전설의 후반부는 뜻밖의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어부가 술에 취해, 고기가 안 잡히는 데 대한 화풀이로 바다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소변을 보았습니다. 이튿날 다른 배들은 모두 빈 배로 돌아왔는데 그 어부의 배만 만선이었다고 합니다.
까닭을 들은 주민들이 너도나도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조업을 나가자 모두 만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 마을은 지금까지의 재앙이 혼인을 못 하고 죽은 애랑이의 원한 때문이라 믿고, 애바위가 보이는 산끝에 애랑신을 모신 뒤 남근을 깎아 제물과 함께 바쳤다고 전합니다.
「해신당생태공원」 항목에 실린 다른 갈래에서는 약혼자 덕배가 꿈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애통해하는 애랑이를 본 뒤, 바다를 향해 가지를 드리운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매달고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더니 덕배의 배만 만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디지털삼척문화대전은 원래 애바위 전설과 남근목 봉헌이 별개의 이야기로 전하기도 했는데, 어느 단계에서 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합쳐졌다고 짚어 둡니다.
해신제 지내는 날과 순서 — 정월대보름과 시월 첫 말날
신남마을 동제는 지금 정월대보름과 시월에 지냅니다. 시월에는 첫 오일, 곧 첫 번째 말날을 고르는데, 디지털삼척문화대전은 죽은 처녀의 기가 세다고 하여 기가 가장 센 말의 날로 잡았다는 주민 설명과 함께 열두 띠 가운데 말의 성기가 가장 크다는 이유도 전합니다.
제관은 당주 한 명과 제관 다섯 명으로 꾸리며, 당주를 포함한 세 명은 본당으로, 두 명은 해신당으로 갑니다. 제관은 제일 열흘쯤 전에 정하고, 정해진 뒤로는 바깥출입을 삼갑니다. 해신당 입구 금줄 아래에서 짚을 태우고 그 위를 지나 부정을 없앤 다음, 준비한 남근목을 제당 왼쪽 벽에 걸고 제물을 차립니다.
해신당에서는 두 제관이 초헌과 종헌을 나눠 맡고 축문은 읽지 않습니다. 제를 마치면 음식을 조금씩 떼어 "잡귀야 잘 받아먹어라" 하며 바닷가에 헌식하고, 어업에 종사하는 집을 위해 소지를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용왕에게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빌며 한 번 더 헌식하는데, 해신당에서 드리는 제는 약 20분 걸린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당집과 해신당공원 — 지금 가면 볼 수 있는 것
해신당은 신남마을 가장 안쪽 바닷가 언덕, 서낭산 끝자락에 있습니다. 돌출한 낮은 구릉 끝을 '서낭댕이'라 부르고, 그 끝에 향나무 신목과 당집이 서 있습니다. 1986년 삼척군이 도비를 지원받아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기와 당집을 신목 앞에 지었고, 안에는 분홍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은 여신의 화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당집 왼쪽 벽 모서리에는 제물로 바친 남근목 다섯 개를 한 줄로 엮어 걸어 두었고, 오른쪽에는 향나무로 깎은 남근목 다섯 개가 마주 걸려 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무당들이 복을 빌며 걸어 둔 복주머니와 삼색천이 있었다고 하며, 전국의 많은 무속인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린다고 디지털삼척문화대전은 적고 있습니다.
해신당 일대는 2002년 해신당생태공원(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1852-6)으로 꾸며졌습니다. 그해 7월 남근조각공원이, 10월 삼척어촌민속전시관이 문을 열었고, 공원 면적은 2만 3089㎡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해신당」 항목은 강릉 안인진리 해랑당과 함께 삼척 신남리 해신당을 동해안 남근 봉헌 신앙의 대표 사례로 꼽습니다.
처녀귀신 이야기와 퇴마 상담 —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해신당 전설이 보여 주듯 우리 무속은 원한 맺힌 넋을 무조건 쫓기보다 먼저 그 사연을 듣고 풀어 주려 했습니다. 미혼으로 죽은 넋을 위한 굿이 지역마다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진오기굿·씻김굿·오구굿 차이 비교 글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님은 몸주신으로 백호할아버지를 모시는 퇴마전문 무당이며, 신당은 경기도 김포시 김포대로 3023번길 82에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010-2300-7167이고, 신이말했다 전화점사 안내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담이나 의례 비용은 공개 자료로 확인되지 않아 적지 않았으니, 궁금한 점은 직접 문의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전설 속 이야기는 문화 기록으로 읽고, 실제 고민은 여러 의견을 들어 차분히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디지털삼척문화대전 「신남마을 해서낭과 남근 봉헌」, 디지털삼척문화대전 「해신당생태공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해신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혼제」
👉 신이말했다 카페 가입하고 새 글 알림 받기: https://cafe.naver.com/910401
https://sinimalhaetda.com
http://pf.kakao.com/_XrLFX

![[광고] 수원 청소업체 더원클린 010-9982-6805](/static/ads/theoneclean_banner_wide.jpg)
댓글 0
댓글은 승인된 회원만 쓸 수 있어요. 로그인 ·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