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새벽기도 뜻 — 해 뜨기 전 교회에 모여 기도하는 한국교회 새벽기도회, 마가복음 1장 35절 근거와 1898년 강진교회·1906년 장대현교회 길선주에서 시작된 역사, 평양대부흥과 새벽 4시 30분의 이유, 특별새벽기도회·통성기도까지 정리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새벽기도는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에 교회에 모여 찬송하고 성경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기도 모임으로, 정식 이름은 새벽기도회입니다. 흔히 1906년 가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 4시에 기도를 시작하면서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교회사 연구자들은 그보다 앞선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교인들이 스스로 새벽기도회를 연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매일 드리는 '매일새벽기도회'가 교회 전체로 자리 잡은 것은 1930년대이고, 성결교회는 1939년 교단 차원에서 매일새벽기도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래에서 새벽기도의 뜻과 성경 근거, 한국교회에서 시작된 과정, 1907년 평양대부흥과의 관계, 시작 시각이 새벽 4시 30분 무렵이었던 이유, 특별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까지 차례로 정리합니다.

새벽기도 뜻 — 하루를 기도로 여는 한국교회의 모임

새벽기도(새벽기도회)는 말 그대로 '새벽에 드리는 기도 모임'입니다. 개인이 혼자 새벽에 기도하는 것도 새벽기도라고 부르지만, 교회에서 말하는 새벽기도회는 정해진 시각에 교인들이 예배당에 모여 짧은 찬송과 성경 봉독, 목회자의 짧은 설교나 말씀 묵상을 나눈 뒤 각자 기도하는 형식이 일반적입니다. 주일 예배처럼 의무로 정해진 예배는 아니어서 참석은 자율이며, 교회마다 시작 시각과 순서가 조금씩 다릅니다.

새벽기도는 세계 기독교 가운데에서도 한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손꼽힙니다. 강변교회 원로 김명혁 목사는 2019년 뉴스파워가 주최한 대담에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큰 축복으로 '주일성수'의 신앙, '새벽기도'의 신앙, '순교'의 신앙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그만큼 새벽기도는 한국 교인들의 신앙 생활과 깊이 연결된 전통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안양대 신학과 이은선 교수는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복음이 들어온 초기부터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하기 시작해 1930년대에 이르러 교회 전체가 시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선교사의 지시가 아니라 한국인 교인들이 스스로 시작한 기도였다는 점이 자주 강조됩니다.

성경 근거 —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예수

교회들이 새벽기도의 본보기로 가장 많이 드는 말씀은 마가복음 1장 35절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 구절을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옮깁니다. 바쁜 사역 가운데서도 날이 밝기 전 홀로 기도하신 예수의 모습이 새벽기도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입니다. 기독교 신문 아이굿뉴스도 1906년 무렵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던 예수님(막 1:35)을 본받아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구약에서는 다윗의 시로 알려진 시편 57편 8절의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구절이 자주 인용됩니다. 김명혁 목사도 앞의 대담에서 다윗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서원했고, 주님께서 친히 새벽 미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는 점을 새벽기도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다만 성경이 새벽기도를 교회의 정식 의무 예배로 명령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새벽기도회는 성경의 기도 정신을 본받아 한국교회가 발전시킨 신앙 관습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새벽기도의 시작 — 1898년 강진교회 사경회와 1906년 장대현교회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는 새벽기도회가 1906년 가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의 주도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길선주는 장대현교회 장로이자 평양신학교 학생이었는데, 평양 교인들의 신앙이 식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같은 교회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 4시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장로교 선교사 스왈런은 1909년 선교 잡지 『한국선교지(The Korea Mission Field)』에 이 일을 기록했는데, 두 사람이 두 달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새벽기도를 계속하다가 사실이 알려지자 주일 예배 때 새벽 4시 반에 종을 치겠다고 광고했고, 처음 종을 쳤을 때 4백~5백 명, 며칠 뒤에는 6백~7백 명이 모였다고 적었습니다. 길선주는 수백 명이 공식 허가 없이 매일 모이는 것이 좋지 않다고 보고 당회에 허락을 요청해 정식 새벽기도회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2019년 이은선 교수는 UCLA 옥성득 교수의 자료를 인용해, 이보다 앞선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에서 31명의 한국인 교인이 참석한 겨울 사경회 때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기록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경회는 일정 기간 모여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초빙된 선교사들의 보고서에는 "이 사경회에서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아침 해가 올라오기 훨씬 전에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하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렸다"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1892년 서울에서 열린 첫 신학반에 참석한 백홍준·한석진 등이 새벽에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했다는 기록, 1901년 황해도 사경회에서 교인들이 새벽 4시경 성경공부를 시작했다는 번하이즐 선교사의 보고, 1904년 이화학당 학생들이 나라를 걱정하며 스스로 새벽기도회를 만든 사례도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장대현교회 새벽기도회의 시점을 두고도 연구자마다 설명이 조금 다릅니다. 옥성득 교수는 기독일보에 실린 글에서 사경회 때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道) 사경회 때 정식 순서가 되었고, 교회가 광고하고 일반 신도들이 모인 장대현교회 새벽기도회는 1909년 무렵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이은선 교수는 1903년 12월 31일부터 2주간 열린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새벽기도회가 정식 순서로 포함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하면, 새벽기도는 어느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만든 제도라기보다 1890년대부터 사경회에서 자발적으로 이어지던 새벽 모임이 1900년대 장대현교회를 계기로 교회의 정기 집회로 굳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길선주와 1907년 평양대부흥 — 새벽기도가 부흥의 불씨가 되다

새벽기도가 널리 퍼진 데에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07년 대부흥운동은 '평양 대부흥운동', '한국의 오순절'이라고도 불리며, 1903년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가 중심이 된 성경 공부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연합사경회에서 길선주의 회개로 부흥이 촉발되었고, 이후 길선주는 전국을 순회하는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 부흥의 특징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사경회 가운데 일어났다는 점, 철저한 회개가 뒤따랐다는 점, 나중에는 한국인이 주도했다는 점, 교회의 도덕적 갱신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듭니다.

길선주는 1869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선도(仙道) 수행을 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1897년 세례를 받았습니다. 1901년 장대현교회 장로, 1902년 조사가 되었고,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1907년 제1회 졸업생 7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그 영향으로 부흥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은선 교수는 1907년 대부흥의 열기를 타고 새벽기도회가 전국 교회로 퍼져, 열심 있는 교회들이 새벽마다 기도회를 열게 되었고, 이런 소식이 당시 「그리스도회보」에 '긔도의 효력'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강화도 교인들이 1914년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 간 순회 부흥회인 '마리산부흥회'도 새벽기도회가 계기가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김명혁 목사는 길선주에게서 시작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죄를 회개하며 부흥을 위해' 드리는 기도였다고 설명하고,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도 평생 새벽기도에 힘쓴 인물로 꼽았습니다.

왜 새벽 4시 30분이었을까 — 파루 종소리와 하루의 시작

초기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대개 새벽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했습니다. 옥성득 교수는 기독일보에 실린 글에서 그 이유를 조선시대 도성의 '파루(罷漏)'에서 찾습니다. 조선의 큰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새벽 4시에 파루로 종을 33번 쳐서 성문을 열고 통행을 시작했으며, 밤 10시에는 인정(인경)으로 28번 종을 쳐 성문을 닫았습니다. 4시에 하루를 시작하던 생활 습관대로 일어나 예배당에 오면 4시 30분이 되었고, 먼 곳에서 오는 교인이 많으면 5시에 모였다는 설명입니다.

새벽기도의 뿌리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이덕주 교수는 1905년 송도(개성) 부인사경회 기록을 근거로,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을 위해 빌던 여성들의 습관이 사경회 기간의 새벽기도회로 바뀌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옥성득 교수는 시간과 성격, 의례 면에서 연속성을 찾기 어렵다며 이 견해에 의문을 제기했고, 선도 수행자 출신인 길선주와 동료들이 개종 후 평소의 새벽 수행 습관을 사경회에 들여왔다는 견해를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말테 교수는 새벽기도를 남성 지도자들이 먼저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처럼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한국인 교인들이 스스로 시작했다는 점은 대부분의 연구가 공통으로 인정합니다.

특별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 — 오늘날의 새벽기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매일 새벽기도회를 열고, 연초나 고난주간, 교회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는 '특별새벽기도회(특새)'를 일정 기간 집중해서 엽니다. 이은선 교수에 따르면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는 교회 전체가 매일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았고, 대부분 일주일이나 10일 정도 기간을 정해 놓고 하는 기도회였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 매일새벽기도회가 시행되기 시작했고,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다가 매일새벽기도회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KCI에 실린 성결교회 새벽기도회 연구도 성결교회가 1920년대에는 특정 기간의 새벽기도회를, 1930년대에는 매일새벽기도회를 지향했다고 정리합니다.

새벽기도회와 함께 자리 잡은 한국교회의 기도 방식이 통성기도입니다. 통성기도는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소리 내어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방식으로, 아이굿뉴스는 1906년 무렵 시작된 새벽기도회의 열성적인 기도 관행이 통성기도로 발전했다고 소개합니다. KCI에 실린 한 논문은 통성기도를 공동체의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공동체적 탄원기도'로 정의하고, 이미 세계 교회에 고유명사처럼 알려진 한국교회의 기도 형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새벽기도회에 처음 참석하는 분이라면 다니는 교회의 시작 시각과 장소를 주보나 교회 공지로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은선 교수는 앞으로의 새벽기도회가 그날 설교로 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한 공적인 기도와, 각자의 문제를 말씀에 비추어 기도하는 개인 기도를 함께 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정리하면, 새벽기도는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예수를 본받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한국 개신교의 기도 모임이며, 1890년대 사경회에서 한국인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1906년 전후 길선주의 장대현교회와 1907년 평양대부흥을 거쳐 전국으로 퍼지고, 1930년대 매일새벽기도회로 정착했습니다. 세례, 성찬식, 주기도문, 평양대부흥처럼 한국교회 신앙과 역사에 관한 다른 글도 신이말했다 개신교 게시판에서 함께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 성경(마가복음 1:35, 시편 57: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07년 대부흥운동」·「길선주」, 뉴스파워 「"한국 새벽기도회 시작은 1898년 2월"」(2019.9.19, 이은선·김명혁 대담), 기독일보 「한국교회 새벽기도회 유래는 어떻게 시작됐나?」(2018.1.13, 옥성득), 아이굿뉴스 「새벽 4시의 기도, 평양대부흥의 불씨가 되다」, KCI 「해방 이전 한국 성결교회 새벽기도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공동체적 탄원기도로서의 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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