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토마스 선교사와 제너럴셔먼호 — 대동강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성경으로 도배한 집과 널다리골 교회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한국 이름 최난헌 崔蘭軒) 선교사는 1866년 9월 제너럴셔먼호 사건 때 평양 대동강 가에서 목숨을 잃어, 한국 개신교에서 '첫 개신교 순교자'로 기억되는 영국 웨일스 출신 목사입니다. 『고종실록』 고종 3년 7월 27일 기사에 그의 이름 '崔蘭軒'이 직접 기록되어 있고, 그가 강변에서 나누어 준 한문 성경이 훗날 평양 첫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장대현교회의 전신)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국 교회사 책이나 설교에서 "대동강 가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라는 표현을 들어 보신 분이 많으실 거예요. 바로 토마스 선교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만 그가 탔던 제너럴셔먼호는 조선의 금지를 어기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무장 상선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역사학과 교회사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함께 읽혀 왔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로 본 한국사』, 『고종실록』, 그리고 교회사 자료를 바탕으로 토마스 선교사의 짧은 생애를 차분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웨일스 목사의 아들, 아내를 잃고 다시 일어서다

토마스는 웨일스 라야다(Rhayader)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출생 연도는 자료에 따라 1839년 또는 1840년으로 조금씩 다르게 적혀 있어요. 런던대학 뉴칼리지에서 공부한 뒤 1863년 고향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해 런던선교회 파송을 받아 아내 캐롤라인(Caroline Godfrey)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선교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아내가 낯선 땅에서 세상을 떠나는 큰 슬픔을 겪습니다. 선교회 지도부와도 뜻이 맞지 않아 선교사직을 내려놓고 산둥성 즈푸(옌타이)의 청나라 해상세관에서 통역으로 일하게 되지요. 이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알렉산더 윌리엄슨 목사를 만나고, 즈푸를 찾은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에게서 조선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마음에 조선 선교의 꿈이 다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귀츨라프 다음으로 조선을 찾은 개신교 선교사

조선 땅을 처음 밟은 개신교 선교사는 토마스가 아니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는 순조 32년(1832) 독일인 선교사 귀츨라프(Charles Gutzlaff)가 영국 동인도회사의 위촉을 받고 서해안을 찾아 충청도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을 나누어 주었고, 통상 요청이 거절되자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적고 있어요. 그 다음으로 통상과 선교를 위해 찾아온 개신교 선교사가 바로 토마스였다고 같은 자료는 설명합니다. 위키백과 등은 귀츨라프가 개인 자격으로 왔던 것과 달리 토마스는 선교회 소속 목사로 왔다는 점을 들어 그를 '첫 개신교 선교사'로 부르기도 한다고 소개합니다.

당시 조선은 굳게 문을 닫고 있던 때였습니다. 특히 1866년은 병인박해로 천주교 신자들과 프랑스 신부들이 처형된 해였고,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돌던 시기였어요. 위키백과에 따르면 런던선교회와 동료들도 이 때문에 토마스의 조선행을 말렸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고 합니다.

1865년 첫 방문 — 황해도 바닷가에서 우리말을 배우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사』의 '기독교의 전개' 서술에 따르면, 토마스는 1865년 늦가을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목선에 승객으로 올라 우리 서해안에 약 석 달 머물며 우리말을 배우고 바닷가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교회사 자료들은 그 장소를 황해도 연안의 창린도로 소개해요. 입국의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만주를 거쳐 1866년 초 베이징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조선의 동지사(冬至使) 일행을 만나기도 했다고 같은 자료는 적고 있습니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그리고 대동강의 비극

국사편찬위원회 『사료로 본 한국사』는 1866년 제너럴셔먼호가 영국인 소유 메도우즈 상사와 용선 계약을 맺고 의류·유리·양철과 함께 대포와 조총을 싣고 조선으로 향했으며, 조선 선교 경험이 있던 토마스를 통역으로 임시 고용했다고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너럴셔먼호 사건」 항목에 따르면, 조선 관리들은 통상은 국법에 어긋나고 대동강 항행은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만류했지만 배는 만경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 관원을 억류하고 총포를 쏘아 사상자가 나오자, 평안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배를 불태웠지요.

『고종실록』에 실린 박규수의 보고에는 배에 불이 번지자 "토마스〔崔蘭軒〕와 조능봉이 뱃머리로 뛰어나와 목숨을 살려 달라고 청하므로 사로잡아 강안으로 데려왔으나, 분을 참지 못한 군민들이 모여들어 때려죽였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 쪽에서 보면 나라의 금령을 어기고 백성을 해친 침입 사건이었고, 그 한복판에 성경을 품은 한 젊은 선교사가 있었던 셈이에요. 그의 나이는 스물예닐곱이었습니다.

성경으로 도배한 집 — 널다리골 교회 이야기

교회사 자료들이 전하는 그 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토마스는 배가 강을 오르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한문 성경을 건넸다고 해요. 12세 소년 최치량이 받은 성경 몇 권은 금서라는 두려움 때문에 평양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넘어갔고, 박영식은 질 좋은 종이가 아까워 그 책장을 뜯어 집 벽지로 발랐다고 합니다. 벽에 붙은 말씀을 읽던 두 사람이 훗날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 집이 평양 최초의 장로교회인 널다리골 교회, 곧 1907년 평양대부흥의 무대였던 장대현교회의 전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토마스를 내리친 병사로 알려진 박춘권도 그에게서 받은 책을 읽고 훗날 교회의 영수(지도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목회와 신학』(2005년 2월호)에 실린 글은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가 훗날 숭실에서 공부하고 레이놀즈 선교사의 조사(助師)가 되어 한글 성경 번역을 도왔다고도 소개해요. 이 이야기들은 주로 후대에 모은 증언에 기대고 있어서 세부 내용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시면 좋겠어요. 1932년에는 그가 숨진 대동강 가에 토마스 기념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토마스 선교사를 기억하는 방법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는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젊은 목사"라는 감동과 함께, 무력을 앞세운 이양선에 올랐던 한계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연구자들도 선교사 토마스와 무장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지요. 슬픔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낯선 나라의 말을 배우던 그의 마음, 그리고 벽지가 된 성경이 사람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말씀의 힘'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이 그의 이야기에 자주 함께 붙는 이유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너럴셔먼호 사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1255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로 본 한국사』 「제너럴 셔먼호 사건」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114_0050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기독교의 전개」 https://db.history.go.kr/diachronic/pdfViewer.do?levelId=oh_020_0030 , 『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7월 27일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0307027_001 , 위키백과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https://ko.wikipedia.org/wiki/로버트_저메인_토마스 , 한국성결신문 「성경으로 도배된 집과 평양 복음화」 http://www.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38 , 목회와 신학(2005.2) 「토마스의 순교와 평양대부흥운동」 http://www.kich.org/news/articleView.html?idxno=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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