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헨델의 「메시아」(Messiah, HWV 56)는 1741년 8월 22일부터 9월 14일까지 단 24일 만에 작곡된 영어 오라토리오이고,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자선 공연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습니다.** 3부 53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유명한 「할렐루야」 합창은 제2부의 마지막 곡입니다. '할렐루야'에서 청중이 일어서는 관습은 국왕 조지 2세가 일어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왕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해마다 대림절과 성탄절이 다가오면 교회와 공연장 곳곳에서 「메시아」 공연 소식이 들려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울려 퍼지는 그 합창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오늘은 영어·한국어 위키백과에 정리된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이 곡이 어떻게 태어나 300년 가까이 사랑받게 되었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오페라 작곡가 헨델, 영어 오라토리오로 길을 바꾸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1685년 지금의 독일 할레에서 태어나 1712년 런던에 자리를 잡았고, 1727년 영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1711년 「리날도」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런던에 소개했고, 이후 40편이 넘는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습니다.
하지만 1730년대에 들어서자 런던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었습니다. 1728년 「거지 오페라」가 크게 성공하면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풍자하는 영어 작품이 인기를 끌었고, 헨델의 극장 수입은 줄어들었습니다. 헨델은 그 대안으로 영어 오라토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1741년 마지막 이탈리아 오페라 「데이다미아」 이후로는 오페라를 그만두었습니다. 「메시아」는 그가 쓴 여섯 번째 영어 오라토리오입니다.
성경 구절로 엮은 대본, 찰스 제넨스
「메시아」의 가사는 헨델이 직접 쓴 것이 아닙니다. 음악과 문학을 사랑한 부유한 지주 찰스 제넨스가 킹 제임스 성경과 1662년판 성공회 기도서의 시편에서 구절을 골라 엮었습니다. 제넨스는 1741년 7월 10일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그 주제는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 주제가 다른 모든 주제를 능가하듯, 이 작품이 헨델의 이전 모든 작품을 능가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의 글을 남겼습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대본은 예수의 생애를 연극처럼 꾸미지 않고 묵상하듯 풀어 갑니다. 제1부는 이사야 등 예언자의 예언과 목자들에게 전해진 탄생 소식, 제2부는 수난과 부활, 승천, 복음의 전파를 다루고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제3부는 죽은 자의 부활과 하늘에서의 영광을 노래하며 「죽임 당하신 어린양」과 「아멘」으로 마무리됩니다.
24일 만의 작곡과 악보 끝의 'SDG'
헨델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1741년 8월 22일 작곡을 시작해 8월 28일에 제1부, 9월 6일에 제2부, 9월 12일에 제3부의 뼈대를 마쳤고, 이틀 동안 세부를 채워 9월 14일 완성했습니다. 259쪽에 이르는 자필 악보에는 잉크 얼룩과 지운 자국이 남아 있지만, 분량에 비해 실수는 놀랄 만큼 적다고 평가됩니다. 이 원본 악보는 지금 영국 대영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헨델은 악보 마지막에 'SDG'라는 세 글자를 적었습니다. 라틴어 Soli Deo Gloria, 곧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이 글귀와 빠른 작곡 속도 때문에 헨델이 「할렐루야」를 쓰며 "하늘 전체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퍼졌지만, 연구자들은 이 일화를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헨델은 다른 오페라도 비슷한 기간에 썼고, 「메시아」를 마친 지 일주일 만에 다음 작품 「삼손」을 시작했습니다.
더블린 초연, 142명의 빚진 죄수를 풀어 준 음악회
헨델은 1741년 11월 18일 아일랜드 총독의 초청으로 더블린에 도착했습니다. 「메시아」는 1742년 4월 13일 피셤블 스트리트의 그레이트 뮤직홀에서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원래 4월 12일로 알렸다가 하루 미뤄진 공연이었고, 성 패트릭 대성당과 그리스도 대성당의 성가대원들이 함께했습니다.
이 공연은 처음부터 자선 음악회였습니다. 수익은 빚 때문에 갇힌 사람들을 돕는 단체, 머서스 병원, 자선 병원 세 곳에 돌아갔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남성에게는 칼을 풀고 오라고, 여성에게는 치마 버팀살을 입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 결과 700명이 공연을 보았습니다. 수익은 약 400파운드였고, 세 곳에 약 127파운드씩 나뉘어 142명의 채무 죄수가 풀려났다고 전해집니다.
할렐루야에서 일어서는 이유, 그리고 오늘의 메시아
런던 초연은 1743년 3월 23일 코번트 가든 극장에서 열렸지만, 거룩한 내용을 극장에서 공연해도 되느냐는 비판 때문에 반응이 차가웠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750년부터 런던 파운들링 병원(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던 곳)에서 해마다 자선 공연이 열리면서부터입니다. 헨델은 눈이 멀어 가면서도 이 공연을 이어 갔고,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연은 1759년 4월 6일, 세상을 떠나기 8일 전이었습니다.
「할렐루야」가 시작되면 청중이 일어서는 관습은 런던 초연 때 조지 2세가 일어서서 모두가 따라 일어났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왕이 그 공연에 왔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고, 일어서는 관습이 처음 기록된 것은 1756년의 한 편지입니다. 그래도 오늘날까지 많은 공연장에서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헨델이 세상을 떠난 뒤 1789년에는 모차르트가 새로 편곡한 「메시아」를 선보였고, 1857년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는 합창단 2,000명과 오케스트라 500명이 함께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헨델 시대의 작은 편성으로 돌아가려는 연주가 많지만, 대규모 공연과 관객이 함께 부르는 공연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24일 만에 쓰인 악보가 처음 무대에 오른 날, 그 수익으로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올겨울 「메시아」 공연을 보러 가신다면, 「할렐루야」가 울릴 때 함께 일어서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세 글자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위키백과(영어) 「Messiah (Handel)」 https://en.wikipedia.org/wiki/Messiah_(Handel) , 위키백과(한국어) 「메시아 (헨델)」 https://ko.wikipedia.org/wiki/메시아_(헨델) (두 문서는 Donald Burrows 『Handel: Messiah』(1991), Richard Luckett 『Handel's Messiah: A Celebration』(1992), 대영도서관 자료 등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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