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최용신 — 『상록수』 채영신의 실제 모델, 샘골 예배당에서 농촌 아이들을 가르친 감리교 신학생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은 감리교 신학생이자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1909~1935)입니다.** 그는 1931년 10월 YWCA(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농촌지도사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파견되어, 교회 예배당을 빌려 한글과 산술, 성경을 가르쳤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샘골강습소 자리에는 지금 최용신기념관이 서 있습니다.

국어 시간에 『상록수』라는 제목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소설 속 채영신이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고,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한 힘이 새벽 종소리와 함께 드린 기도였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안산시 최용신기념관 자료를 바탕으로 '샘골의 상록수' 최용신 선생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원산 명사십리에서 자란 기독교 집안의 딸

최용신기념관에 따르면 최용신은 1909년 함경남도 덕원에서 부친 최창희와 모친 김씨 사이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사재를 들여 사립학교를 세웠고, 아버지는 1927년 신간회 덕원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기념관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 교육가 정신, 민족 사상이 이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원산의 개신교 여학교인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1928년에 졸업했습니다. 졸업 무렵 조선일보(1928년 4월 1일)에 실린 글 「교문에서 농촌에」에서 그는 "우리 농촌으로 달려가자! 손을 잡고 달려가자!"라고 썼습니다. 화려한 도시 대신 글을 모르는 농촌 여성들 곁으로 가겠다는, 열아홉 살 졸업생의 다짐이었습니다.

협성여자신학교와 새벽 종소리의 기도

졸업 후 최용신은 협성여자신학교(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1929년 YWCA 총회에 학생 대표로 참여한 일이 농촌계몽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고, 그해 황해도 수안 등지로 농촌 실습을 나갔습니다. 첫 실습은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쉽지 않았지만, 그는 이 경험을 교훈 삼아 다음 실습에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신학생 시절인 1929년 4월 2일에 쓴 기도문이 지금도 전해집니다. 새벽 종소리를 듣고 층계에 나가 무릎을 꿇은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일하여도 의를 위하여 일하옵고, 죽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게 하소서." 이 기도문은 훗날 『최용신 소전』을 쓴 류달영이 동생 최용경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의 짧은 생애는 이 기도의 문장을 그대로 따라간 길처럼 보입니다.

1931년 10월, 샘골 예배당에서 시작된 강습소

샘골교회는 1907년 홍원삼·홍순호 형제가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시작된 감리교회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29년 미감리회 여선교사 밀러가 이곳에서 순회강습회를 열었고, 1931년 YWCA가 최용신을 파송하면서 샘골학원은 크게 자랐습니다.

최용신은 교회 예배당을 빌려 한글·산술·재봉·수예·가사·노래·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세상 모르는 젊은 여자가 무엇을 하겠느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농사철이면 밭에 나가 일손을 돕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마을의 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낮에는 아이들을, 밤에는 야학에서 어른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생이 늘자 1932년 5월 학원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8월에는 학원 건축발기회가 꾸려졌습니다. 둔대교회 설립자 박용덕이 땅을 내놓았고,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10월 27일 정초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1933년 1월 15일, 마침내 샘골강습소 건물의 낙성식이 열렸습니다.

일본 유학과 다시 돌아온 샘골, 그리고 유언

더 체계적인 농촌교육을 배우고 싶었던 최용신은 1934년 일본 고베의 여자신학교 사회사업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각기병이 악화되어 몇 달 만에 샘골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사이 YWCA는 재정난으로 보조금을 끊겠다고 알려 왔고, 그는 잡지 『여론』에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호소문 「농민의 하소연」을 기고했습니다.

몸이 채 낫지 않은 채 수업을 이어 가던 그는 1935년 1월 장중첩증으로 쓰러져 수원도립의원에 입원했고, 1월 23일 스물다섯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유언장에는 "나는 갈지라도 사랑하는 천곡 강습소를 영원히 경영하여 주시오", "유골을 천곡 강습소 부근에 묻어주오"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뜻대로 강습소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그를 묻었고, 장례는 교회와 학원의 연합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해방 뒤에는 10년 동안 약혼자였던 김학준이 샘골고등농민학원을 열어 그 뜻을 이었습니다.

채영신이 된 최용신 — 소설 『상록수』

그해 동아일보사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장편소설을 공모했고, 심훈의 『상록수』가 당선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소설은 1935년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127회 연재되었고, 여주인공 채영신은 샘골에서 헌신한 최용신을 모델로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설 속 채영신이 '청석학원'을 세우고, 일본에 잠시 유학했다가 건강이 나빠져 돌아와 끝내 쓰러지는 줄거리는 최용신의 실제 삶과 겹칩니다. 『상록수』는 1961년 신상옥 감독(최은희 주연), 1978년 임권택 감독(한혜숙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최용신기념관과 오늘의 '상록수 정신'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64년 '용신봉사상'을 만들어 해마다 헌신적인 봉사자에게 시상하고 있습니다. 1995년에는 당시 신문 기사가 사료로 인정되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2005년 1월에는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디지털안산문화대전에 따르면 2007년 문을 연 최용신기념관은 생존 제자 홍석필 선생의 기탁금으로 세워졌습니다. 이곳에는 1932년 강습소를 지을 때 쓴 주춧돌 20개 가운데 15개가 남아 있고, 샘골강습소를 재현한 모형과 건국훈장, 『상록수』 초판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산 상록구라는 지명과 '상록수역'이라는 역 이름도 모두 이 이야기에서 나왔습니다.

샘골교회 뒤편 언덕 아래 묘비에는 최용신 선생의 가르침으로 전해지는 글귀도 새겨져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네 가지 요소로 가난의 훈련, 어진 어머니의 교육, 청소년 시절에 받은 큰 감동,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하는 것을 꼽은 문장입니다. 가난한 농촌 아이들에게 배움의 문을 열어 주려 했던 그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잃지 않는 나무처럼, 한 사람의 신앙과 사랑이 한 마을을 바꾸었습니다. 안산에 들르신다면 샘골교회 뒤 언덕의 묘소와 기념관을 찾아, "죽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게 하소서"라던 젊은 신학생의 기도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용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50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샘골교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71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록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067 ,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샘골강습소」 https://ansan.grandculture.net/ansan/toc/GC02500808 , 안산시 최용신기념관 「최용신」 https://www.ansan.go.kr/choiyongshin/common/cntnts/selectContents.do?cntnts_id=C0000970 , 위키백과 「최용신」 https://ko.wikipedia.org/wiki/최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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