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숭실학교 — 평양 사랑방 열세 명에서 시작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문을 닫은 한국 첫 대학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열흘 전인 10월 10일은 서울 상도동 숭실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2027년 10월 10일을 기하여 130주년을 맞이한다"고 소개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학교가 처음 문을 연 곳은 서울이 아니라 평양이었고, 그 시작은 한 선교사 집의 사랑방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숭실학교」·「숭실대학교」·「숭실고등학교」 항목과 숭실대학교 공식 역사 소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전시 안내, 그리고 학술 논문을 바탕으로 평양 숭실학교의 130년 가까운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 보겠습니다.

■ 평양 신양리 사랑방에 모인 열세 명 — 1897년 10월 10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숭실의 시작은 1897년 10월 10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 M. Baird, 한국 이름 배위량 裵緯良)가 평안남도 평양 신양리에 있던 자기 집에서 13명의 학생을 데리고 학당을 연 일입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연표는 그 주소를 '평양 신양리 26번지'로 적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나이도 눈길을 끕니다. 「숭실고등학교」 항목은 입학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아 16세에서 36세까지의 학생 13명으로 출발했고, 이듬해에는 60명이 지원해 18명을 뽑았다고 전합니다. 한국인 교사로는 한학자 박자중(朴子重)이 함께했고, 처음에는 성경·한문·수학·음악·체조를 가르쳤습니다. 그 뒤 『사민필지』 같은 세계지리 교재와 천문·논리·생리 같은 과목도 더해졌다고 합니다.

백과사전은 베어드가 부산에서 평양으로 옮겨 온 뒤 기독교 정신에 따른 중등교육을 하려고 이 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교장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901년에는 선교사 소안론의 기금으로 한식 기와를 얹은 2층 교사를 새로 지어 옮겼고, 이때 한문 교사 박자중이 '숭실학당(崇實學堂)'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백과사전은 기록합니다.

■ '숭실(崇實)'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

숭실대학교는 학교 이름의 뜻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숭'은 숭상한다는 뜻이고, '실'은 '진실'의 실이자 '성실'의 실이라는 것이지요. 진실은 진리를 찾는 일을, 성실은 도덕적인 인격을 닦는 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숭실이라는 이름에는 진리 탐구와 인격 수련을 함께 해 나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고, 이것이 오늘날 이 학교의 교육 이념인 '진리와 봉사'로 이어졌다고 학교는 소개합니다.

학교의 설립 목적도 분명했습니다. 숭실대학교의 「평양숭실」 소개에 따르면 숭실학당은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참된 교사와 교역자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 중등교육기관이었습니다. 학당은 1900년 수업 연한 5년의 정식 중학교 과정으로 자리를 잡았고, 1904년 첫 졸업생 세 명을 배출했습니다.

■ 한국 대학 교육의 첫걸음 — 1906년 대학부

중학 과정에서 졸업생이 나오자 그다음 단계에 대한 바람이 커졌습니다. 숭실은 1906년 가을 대학부를 설치했는데, 학교 측은 그 날짜를 1906년 9월 15일로, 백과사전과 박물관 연표는 1906년 10월로 적고 있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부가 함께 학교 운영에 참여했기 때문에 영어 이름은 '유니언 크리스천 칼리지(Union Christian College)', 우리말로는 '합성숭실대학' 또는 '평양숭실대학'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대학부가 "한국 대학교육의 효시가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12명의 학생이 입학했고, 1908년 대학부 제1회 졸업생 2명이 나왔습니다. 박물관 연표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변인서·김두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910년에는 재학생이 54명으로 늘었고, 1912년에는 조선총독부의 정식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1925년 일제의 「전문학교규칙」에 따라 4년제 문과만 있는 '숭실전문학교'로 격이 낮아졌습니다.

■ 평양 민족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숭실은 공부만 하는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숭실대학교」 항목은 이 학교가 일제강점기 평양 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이 되어 105인사건, 국민회사건, 3·1운동, 광주학생운동, 신사참배 거부운동 등에서 민족정신을 보여 주었고, 서북 지방 인재 교육의 산실 역할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숭실고등학교」 항목은 더 구체적입니다. 105인사건 때 졸업생 차이석·변인서·곽태종·김두화·길진형·윤원삼·안세환 등이 검거되어 대거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하지요. 첫 대학 졸업생 두 사람의 이름이 이 명단에 함께 있다는 점이 마음을 울립니다. 진리를 배우던 교실이 곧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자리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닫은 교문 — 1938년

1930년대 중반부터 일제는 학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숭실중학교·숭의여학교, 이른바 '3숭(三崇)'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폐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학교를 살리려는 구명운동도 치열했습니다. 선교부가 경영을 포기하자 고한규 장로는 조만식·오윤선·김동원 등과 의논해 학교를 맡을 한국인을 찾았습니다. 몇 차례 인수 시도가 있었고, 1937년 가을에는 광산 사업가 이종만이 120만 원의 재단으로 숭실전문을 인계하겠다고 나서 관계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총독부가 숭실전문의 인계를 허락하지 않아 이 길도 막혔습니다. 김명배 교수의 논문 「신사참배 문제와 평양의 미션스쿨 폐교과정에 대한 역사적 재고찰」(『기독교사회윤리』)은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 사이, 그리고 선교사와 한국인 사이에 입장 차이와 갈등이 여러 겹으로 얽혀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숭실중학교와 숭의여학교의 폐교원은 1937년 10월 29일, 숭실전문학교의 폐교원은 11월 1일 제출되었다고 이 논문은 정리합니다.

결국 숭실은 1938년 3월 문을 닫았습니다. 백과사전은 숭실대학이 "1938년 3월 마지막 졸업생 443명을 배출하고" 숭실중학교·숭의고등여학교와 함께 자진 폐교했다고 기록합니다. 숭실중학교 쪽은 33회에 걸쳐 1,257명의 졸업생을 내고 개교 4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 서울에서 다시 열린 숭실, 그리고 130주년을 앞두고

광복 뒤 숭실 사람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학교를 다시 세웠습니다. 숭실대학교는 1953년 12월 서울 영락교회에서 재건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54년 4월 15일 설립 인가를 받아 "폐교를 결의한 지 만 16년 만"에 재건되었다고 소개합니다. 박물관 연표에 따르면 1954년 5월 영락교회를 임시 교사로 개교했고 초대 학장은 한경직 목사였으며, 1957년 6월 상도동 새 교사로 옮겼습니다. 숭실 중·고등학교도 1953년 5월 인가를 받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상도동 캠퍼스에는 1967년 문을 연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있고, 그 안의 '숭실 역사실'에서 평양 숭실의 창립과 대학부 설치, 신사참배 거부와 자진 폐교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 문의 전화는 02-820-0752~3입니다. 관람 시간과 휴관일은 방문 전에 박물관 누리집에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평양 신양리 사랑방에서 열세 명이 시작한 공부가 신사참배 앞에서 교문을 닫는 결단으로, 다시 서울의 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내년 가을 130주년을 앞둔 지금, '진실과 성실을 숭상한다'는 이름의 뜻을 우리 삶에도 한 번 비춰 보면 어떨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숭실학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07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숭실대학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07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숭실고등학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076 , 숭실대학교 「숭실 史」 https://ssu.ac.kr/학교소개/역사/숭실-史/ , 숭실대학교 「평양숭실」 https://ssu.ac.kr/학교소개/역사/평양숭실/ ,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 역사실」 https://museum.ssu.ac.kr/전시안내/상설전시/숭실-역사실/ , 김명배 「신사참배 문제와 평양의 미션스쿨 폐교과정에 대한 역사적 재고찰」 『기독교사회윤리』 https://journal.kci.go.kr/csethics/archive/articleView?artiId=ART00307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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