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남쪽 덕숭산 기슭에 오래된 절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자 우리나라 대표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 수덕사입니다. 태안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내포 땅의 이 절은 백제 때부터 이어져 온 깊은 역사와 함께, 지은 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인 국보 대웅전을 품고 있습니다. 한말에는 끊어질 뻔한 선(禪)의 등불을 다시 밝힌 스님들이 머문 곳이기도 하지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이 가을, 덕숭산 수덕사가 걸어온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 백제의 절 가운데 유일하게 법등을 이어 온 곳
수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디지털예산문화대전에 따르면 절에 남은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 스님이 다시 고쳤다고 되어 있고, 다른 기록에는 599년(백제 법왕 1)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백제 승려 혜현이 이곳에서 법화경을 강론하고 독송하는 데 힘썼다고 소개하며, 백제가 무너진 뒤 부흥 운동을 이끈 승려 도침이 '북부 수덕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문헌에 이름이 남은 백제 사찰은 여럿이지만, 지금까지 법등을 이어 오는 곳은 수덕사가 거의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내에서 백제 시대의 기와 조각이 발견된 것도 이런 오랜 내력을 뒷받침합니다.
■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절 이름에 얽힌 이야기
절과 산의 이름에는 아름다운 설화가 전해 옵니다. 수덕사 측이 전하는 창건 설화에 따르면, 수덕이라는 도령이 사냥을 나갔다가 덕숭이라는 낭자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여러 번 청혼했지만 거절당하던 끝에, 낭자는 집 근처에 절을 지어 주면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도령은 욕심을 품은 채 절을 지었는데 완공 직전에 불이 나 버렸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세 번째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부처님만 생각하며 지었더니 마침내 절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인 뒤 도령이 낭자를 끌어안으려는 순간 천둥 번개와 함께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 짝만 손에 남았고, 그 자리에는 하얀 버선꽃이 피었다고 하지요.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고, 그래서 절은 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 산은 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무언가가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 설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1308년, 대들보에서 나온 붓글씨가 알려 준 나이
수덕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보 대웅전입니다. 오랫동안 이 건물이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37년 해체 수리를 하던 중 대들보에서 붓으로 쓴 글씨(묵서명)가 발견되면서 고려 충렬왕 34년, 곧 1308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수덕사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앞면 3칸, 옆면 4칸 크기에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얹었고, 처마를 받치는 짜임이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옆면의 기둥과 들보가 만들어 내는 면 분할이 한 폭의 추상화 같다는 찬사를 받습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되면서 지금은 번호 없이 '국보'로 불립니다. 대웅전 안에는 1639년 조성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이 모셔져 있는데, 수덕사의 중흥조 만공 스님이 전북 남원의 귀정사에서 옮겨 온 불상이라고 합니다.
■ 경허와 만공, 다시 피어난 선(禪)의 바람
조선 시대 내내 억눌렸던 불교는 한말에 이르러 수행의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때 수덕사와 인근 천장암, 개심사 등에 머물며 선풍을 크게 일으킨 이가 경허(1846~1912) 스님입니다. 경허 스님은 수월, 혜월, 만공, 한암 같은 제자들을 길러 냈고, 이들은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선의 씨앗을 퍼뜨렸습니다. 그 가운데 만공(1871~1946) 스님은 1898년 수덕사를 중창하고, 1905년 무렵부터 덕숭산 금선대에 머물며 화두를 드는 간화선 수행을 이끌었습니다. 1933년에는 절을 대대적으로 새로 고쳤고, 덕숭산 위쪽에 정혜사와 견성암 같은 수행처를 세웠습니다. 한국 불교를 해외에 널리 알린 숭산(1927~2004) 스님도 1949년 이곳에서 비구계를 받았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합니다. 덕숭산 꼭대기 가까이에는 '세계일화(世界一花)',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만공탑이 서 있어 스님의 가르침을 오늘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 덕숭총림과 내포 불교의 중심
1962년 수덕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가 되어 충남 일원의 여러 말사를 아우르는 내포 불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덕숭총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총림이란 참선하는 선원,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계율을 익히는 율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종합 수행 도량을 말합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백련당, 청련당, 명부전, 범종각, 일주문 등이 자리하고, 불교 유물을 전시하는 근역성보관도 있습니다. 대웅전 외에도 노사나불 괘불탱, 목조삼세불좌상 등 여러 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만공 스님이 받았다는 고려 공민왕의 거문고가 전해진다는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수덕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어, 하루쯤 산사의 예불과 공양을 경험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됩니다.
■ 이응노의 수덕여관, 예술이 머문 자리
수덕사 일주문 가까이에는 초가로 된 옛 수덕여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화가 고암 이응노(1904~1989)가 1944년 사들여 한국전쟁 때 피난처로 쓰고,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하던 곳입니다. 디지털예산문화대전에 따르면 그는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이곳에서 요양하며, 여관 뒤뜰 바위에 삼라만상의 흥하고 쇠함을 문자 추상으로 새긴 암각화를 남겼습니다. 이 일대는 1996년 '이응노 선생 사적지'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1920년대의 대표적 신여성 김일엽이 1933년 출가해 만공 스님의 문하에 들어간 일도 수덕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앙과 수행, 예술이 한자리에서 만난 덕분에 수덕사는 불자가 아니어도 한 번쯤 꼭 걸어 보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가을 햇살 아래 맞배지붕의 대웅전 옆면을 오래 바라보며, 칠백 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 온 시간에 조용히 마음을 기대어 보시면 어떨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숭산 수덕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4 , 디지털예산문화대전 「수덕사」 https://yesan.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034 , 디지털예산문화대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https://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0459 , 디지털예산문화대전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한국 최고의 목조 건축, 수덕사 대웅전」 https://www.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529 , 디지털예산문화대전 「이응노선생사적지」 https://yesan.grandculture.net/yesan/toc/GC06600422 , 위키백과 「수덕사」 https://ko.wikipedia.org/wiki/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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