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락, 일주문을 지나면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선 길이 나타납니다. 그 숲길 끝에서 맑은 계곡물을 건너면 천 년 넘게 오대산을 지켜 온 절, 월정사가 모습을 드러내지요. 단풍이 짙어지는 10월이면 이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로 오대산이 한층 붐빕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청 안내, 그리고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월정사와 오대산에 깃든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보겠습니다.
■ 643년 자장율사, 문수보살을 찾아 오대산에 오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절입니다. 자장율사는 임시로 풀로 엮은 암자를 짓고 머물며 문수보살의 진신을 뵙고자 했지만, 머문 사흘 내내 날씨가 음산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그 뒤 신효거사와 범일국사의 제자 신의 스님이 이 자리에 머물렀고, 오랫동안 황폐했던 암자를 수다사의 장로 유연 스님이 다시 지으면서 비로소 절다운 모습을 갖추었다고 해요.
그래서 월정사는 처음부터 '문수신앙'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절입니다. 백과사전은 월정사를 문수신앙의 중심이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곳으로 소개합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강원 남부의 60여 개 사찰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 불타고 다시 일어선 절, 탄허 스님의 적광전
월정사의 역사는 다시 세우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백과사전 기록을 보면 1307년(충렬왕 33) 화재로 모두 불탄 것을 이일 스님이 중창했고, 1833년(순조 33)에 다시 불에 타 1844년(헌종 10) 영담·정암 스님 등이 중건했습니다.
가장 큰 시련은 한국전쟁 때 찾아왔습니다. 1·4후퇴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해 칠불보전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이지요. 폐허가 된 절을 다시 일으킨 분이 탄허 스님입니다. 1964년 탄허 스님이 지금의 법당인 적광전을 중창했고, 이어 만화 스님이 꾸준히 불사를 이어 오늘의 월정사에 이르렀다고 백과사전은 전합니다.
■ 15.2m 팔각 구층석탑과 공양하는 보살
적광전 앞마당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팔각 구층석탑입니다. 국가유산청 지정 정보에 따르면 이 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고, 높이는 15.2m에 이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네모난 탑과 달리 평면이 팔각형이고 층수도 아홉 층이나 되는데, 백과사전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이런 '다각다층석탑'의 대표가 될 만하다고 평가합니다. 2001~2005년 주변 발굴조사에서 중국 송나라 동전이 나와 조성 시기가 12세기경으로 밝혀졌다고 해요.
한국전쟁 때 탑도 피해를 입어 1970년 해체 보수를 했는데, 이때 5층 지붕돌에서 은으로 만든 여래입상이, 1층 몸돌에서는 구리거울과 경전, 향나무, 수정 사리병 같은 사리장치가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상륜부 금속 장식이 낡아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보수 공사를 했고, 떼어 낸 원본은 보존처리를 거쳐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다고 중앙일보가 전했습니다.
탑 앞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석조 보살좌상이 있는데, 이 보살상도 2017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듯한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 1km 전나무숲길과 9km 선재길
월정사를 찾는 많은 분들이 손꼽는 것은 단연 전나무숲길입니다. 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 안내에 따르면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약 1km 구간에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서 있어요. 길이 평탄해 천천히 걷기 좋고,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월정사의 대표 명소로 소개됩니다.
조금 더 걷고 싶다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약 9km의 '선재길'도 있습니다. 같은 안내에 따르면 월정사는 휴식형·체험형 템플스테이와 행자생활을 체험하는 출가학교도 운영하고 있어, 하룻밤 머물며 산사의 하루를 경험해 볼 수도 있습니다.
■ 상원사 — 가장 오래된 종과 세조의 문수동자 이야기
선재길 끝의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오대산 문수신앙의 중심입니다. 국가유산청 안내판에 따르면 상원사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국보로, 지금까지 확인된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원래 안동에 있던 종을 1469년(예종 1) 왕명에 따라 상원사로 옮겨 왔다고 해요.
상원사에는 유명한 전설도 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세조가 상원사에 머물며 계곡에서 목욕할 때 등을 밀어 준 동자승이 바로 문수보살이었고, 그 뒤 앓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984년 문수동자좌상(국보) 안에서 나온 발원문을 보면, 이 동자상은 1466년 세조의 딸 의숙공주와 사위 정현조가 세조의 수복과 득남을 빌며 조성한 것이었다고 해요. 전설과 기록이 나란히 남아 있어 더 흥미로운 곳입니다.
■ 110년 만에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환지본처'
월정사는 조선왕조실록과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임진왜란 뒤 실록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1606년(선조 39) 월정사 북쪽에 오대산사고를 세웠고, 월정사 주지가 실록을 지키는 '실록수호총섭'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1913년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본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불타 버렸습니다. 문화재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살아남은 실록은 1932년, 2006년, 2017년 세 차례에 걸쳐 돌아왔고, 의궤는 2011년 환수되어 현재 실록 75책, 의궤 82책이 전합니다. 불교신문 보도에 따르면 월정사는 2006년부터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의 '환지본처'를 내걸고 반환 운동을 벌였고, 자신이 운영하던 박물관 건물을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그렇게 2023년 11월 12일 오대산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곳을 실록 원본을 상시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소개했어요.
천 년 넘게 불타고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한 절, 떠났던 기록을 끝내 제자리로 불러온 절. 이번 가을 전나무숲길을 걷다 보면 월정사가 지켜 온 시간의 무게가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대산 월정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05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06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대산사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815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원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23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평창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 좌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240 , 국가유산포털 안내판 「상원사 동종」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GuidePostDetail.do?ccbaCpno=1113200360000&ccgbGbtype=IND&ccgbGbtypeNo=1&pageNo=1_5_0_0 , 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 「월정사·월정사 전나무숲」 https://access.visitkorea.or.kr/ms/detail.do?cotId=f4b6eb22-0757-4a57-a023-8523800c48fb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문화재청 보도자료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110년 만에 원래 있던 자리에 원본으로 돌아오다」(2023.11.9)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598788 , 불교신문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 원본 보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개관식」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07875 , 중앙일보 「오대산사고본 '110년 유랑'에 깃든 사연…평창 실록박물관, 첫 기획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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