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해가 질 무렵, 범종각 쪽에서 둥둥 북소리가 먼저 울리고, 이어 맑은 쇳소리와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번갈아 들리다가 마지막에 묵직한 종소리가 골짜기를 따라 길게 퍼져 나갑니다. 템플스테이에 다녀오신 분이라면 그 소리를 한 번쯤 기억하실 겁니다. 이 네 가지 소리를 내는 도구를 묶어 ‘불전사물(佛前四物)’, 줄여서 ‘사물’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불교신문의 설명을 따라 범종·법고·목어·운판이 각각 무엇이고, 왜 하루 두 번 울리는지 천천히 짚어 보겠습니다.
■ 네 가지 소리, 네 갈래의 중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구」 항목은 불전사물을 “불교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 예불 때 치는 네 가지 불구”라고 설명합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그것입니다. 같은 설명에 따르면 법고는 땅을, 목어는 물을, 범종은 불을, 운판은 바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법고는 육지에 사는 중생을, 목어는 물속 중생을, 범종은 지옥 중생을, 운판은 허공을 나는 중생을 건지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불에 쓰이는 네 가지 사물이 우주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물을 울리는 일은 사람만이 아니라 땅 위의 짐승, 물고기, 하늘의 새, 고통받는 이들까지 세상 모든 생명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불교신문의 「범종각의 사물」 글은 이를 예불문의 한 구절, “온누리 모든 중생이 함께 부처님의 깨달음 이루기를 원하나이다”와 연결해 설명합니다.
■ 범종 — 지옥까지 닿기를 바라는 종성
사물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은 범종입니다. 대백과사전 「범종」 항목은 범종을 대중을 모으거나 때를 알리기 위해 울리는 사찰의 동종이라고 소개하며, 우리나라 금속공예 전체에서도 규모와 조각으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 꼽힌다고 적고 있습니다. 불교신문 「청년을 위한 불교기초강의」에 따르면,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라 부처님의 음성을 담았다고 여겨 ‘종성(鐘聲)’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치는 횟수입니다. 같은 글에 따르면 범종은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 칩니다. 새벽의 28번은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을 합친 ‘삼계 28천’을 모두 깨우려는 뜻이고, 저녁의 33번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선견궁을 중심으로 한 도리천 33천에 부처님의 음성이 퍼지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새벽 산사에서 종소리를 세어 보신다면, 그 숫자 하나하나에 하늘 세계를 향한 바람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 동종 — 천 년 넘게 남은 신라의 종
한국 범종 이야기를 하면 신라의 두 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에 따르면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혜공왕 7년(771)에 완성되었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입니다. 높이 3.66m, 입지름 2.27m이며,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의 정밀 측정에서 무게가 18.9톤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려 만들기 시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아들 혜공왕이 완성했다고 합니다. 처음 봉덕사에 달았다 하여 봉덕사종,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설화 때문에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립니다. 종 꼭대기의 음통(音筒)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라고 하고, 몸체의 1,000여 자 명문은 당시의 종교와 사상을 보여 주는 귀한 금석문으로 평가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대 사료 DB에 따르면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져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높이는 167cm입니다. 성덕대왕신종,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과 함께 온전한 형태로 남은 통일신라 범종 세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 법고 — 마음 심(心) 자를 그리며 치는 북
법고는 법당이나 범종각에 거는 큰 북입니다. 대백과사전 「법고」 항목은 불경에 여러 종류의 북이 나오며, 주로 대중에게 일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의식에서는 범패 장단에 맞춰 치기도 하고, 범종각 사물의 하나로서는 아침·저녁 예불 때 치는데, 그 이유를 축생, 곧 짐승의 무리를 제도하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습니다.
불교신문 「범종각의 사물」 글에 따르면 법고는 나무로 몸통을 만들고 소가죽을 대어 만듭니다. 땅 위에 사는 중생들이 참다운 마음자리를 깨달아 부처를 이루기를 바라는 뜻에서, 북채로 마음 심(心) 자를 그리듯 두드린다고 합니다. 스님 두 분이 번갈아 가며 큰 북을 춤추듯 두드리는 모습은 산사 저녁 풍경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힙니다.
■ 목어와 운판 — 물고기와 구름에 담긴 사연
목어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걸어 두고 두드리는 법구입니다. 대백과사전 「목어」 항목에 따르면 목어고·어고·어판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항목에는 한 설화가 실려 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 제자가 죽어 등에 나무가 자란 물고기로 태어났고, 풍랑이 칠 때마다 그 나무가 흔들려 피를 흘리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스승이 이를 보고 수륙재를 베풀어 해탈하게 하자, 물고기는 잘못을 뉘우치며 등의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장청규』에 따르면 처음에는 식당이나 창고에 걸어 두고 대중을 모으는 데 쓰였고, 뒤에 목탁으로 변하여 독경과 법회에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양도 처음엔 단순한 물고기였다가 점차 용머리에 물고기 몸을 한 ‘용두어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운판은 구름 모양의 넓은 청동판입니다. 대백과사전 「운판」 항목에 따르면 본래 선종 사찰에서 재당이나 부엌에 달아 두고 공양 시간을 알리던 도구였습니다. 죽이나 밥을 끓일 때 세 번 친다고 하여 ‘화판(火板)’, 공양 시간에 길게 친다고 하여 ‘장판(長板)’이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지금은 아침·저녁 예불 때 하늘을 날거나 허공에 머무는 생명들을 위해 칩니다. 두드리면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데, 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는 운판이 고려 후기에 크게 유행했을 것이나 조선시대 것은 그 예가 몹시 드물다고 적고 있습니다.
■ 산사에서 사물 소리를 만날 때
불교신문 「조석예불」 글에 따르면, 새벽 3시 무렵 도량송으로 하루가 열리고 종송이 이어진 뒤 종고루에서 사물이 울립니다. 이 글은 대개 아침에는 법고·운판·범종, 저녁에는 법고·운판·목어·범종 순으로 울린다고 소개하는데, 우리역사넷은 법고·목어·운판·범종 순서를 들고 있어 사찰과 전통에 따라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역사넷에 실린 부석사 종루 사진처럼, 법고·목어·운판은 보통 범종과 함께 한 누각에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백과사전 「사물놀이」 항목에 따르면, 우리가 잘 아는 꽹과리·징·장구·북의 ‘사물놀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이 불교의 사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음엔 법고·운판·목어·범종을 가리키던 말이 범패에 쓰는 악기를 거쳐 절 걸립패의 네 악기를 가리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에 절에 들르신다면 해 질 녘 범종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보시면 어떨까요. 신앙이 같든 다르든, 땅과 물과 하늘과 가장 어두운 곳의 생명까지 떠올리며 울리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들으면, 같은 종소리도 조금 다르게 들릴지 모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31 , 「범종」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598 , 「법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622 , 「목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653 , 「운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0397 , 「사물놀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605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18_0070_0020_0010_0010 , 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 청동운판과 대발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27_0050_0060_0010_0040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성덕대왕신종」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13700290000&ctptUid=13898859698647502806 , 한국 고대 사료 DB 「상원사 동종명」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5_0080_0010_0010 , 불교신문 「범종각의 사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 , 「새벽저녁마다 범종을 치는 이유는?」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335 , 「조석예불」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5449
👉 신이말했다 카페 가입하고 새 글 알림 받기: https://cafe.naver.com/910401
사이트: https://sinimalhaetda.com
카카오채널: http://pf.kakao.com/_XrLFX
![[광고] 수원 청소업체 더원클린 010-9982-6805](/static/ads/theoneclean_banner_wide.jpg)
댓글 0
댓글은 승인된 회원만 쓸 수 있어요. 로그인 ·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