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해남 대흥사 — 서산대사가 '삼재가 들지 않는 땅'이라 한 두륜산 천년 고찰, 국보 마애불과 표충사, 추사·원교 현판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4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해남 대흥사는 두륜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옛 이름은 대둔사(大芚寺), 우리말로는 '한듬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 휴정의 의발(가사와 발우)이 전해지는 절이며, 2009년 사적,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명승으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국보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정조가 이름을 내린 사당 표충사, 초의선사가 40여 년을 머문 일지암이 대표 볼거리입니다.

땅끝 해남 여행을 계획하면 꼭 한 번은 이름을 듣게 되는 곳이 대흥사지요. 숲길이 긴 진입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넓게 펼쳐진 전각들,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현판 이야기까지 이야깃거리가 정말 많은 절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디지털해남문화대전, 국가유산청 자료와 불교계 보도를 바탕으로 대흥사의 역사와 볼거리를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흥사는 어떤 절인가 — 대둔사, 한듬절이라는 이름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은 예전에 대둔산(大芚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래서 절 이름도 원래 대둔사였고, 근대 초기에 지금의 대흥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불교신문은 전합니다. '한듬절'은 이 대둔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부르던 속칭입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에 따르면 대흥사는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9세기 후반 선종 사찰로 중건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사찰 전체가 불에 탔지만, 대웅전 구역 응진전 앞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은 9세기 통일신라 때 유물로 추정되어 그 이전의 역사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됩니다. 이후 1603년과 1665년의 재건 기록이 있고, 1667년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창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련봉과 두륜봉을 중심으로 고계봉,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 등이 절을 감싸고 있어, 사방이 산줄기에 둘러싸여 밖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지형이라는 점도 대흥사의 특징으로 꼽힙니다.

서산대사가 의발을 맡긴 절 — "삼재가 들지 않는 곳"

대흥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서산대사 청허 휴정(1520~1604)입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서산대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으로 팔도십육종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나이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병 1,500명을 모으고 그 총수가 되었습니다.

불교신문은 서산대사가 대흥사를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자신의 의발을 보관하도록 했다고 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인용한 『대둔사지』 기록에 따르면, 1655년(효종 6) 사명대사의 문도인 허백 명조가 서산대사의 옥발우와 비단 가사 등을 묘향산에서 모셔 와 이 절에 전했습니다. 이때 전해진 염주 2종, 금란가사, 옥바릿대 3개와 수저가 지금도 대흥사에 남아 있으며, 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이후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법을 잇는 청허계를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고,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한 선(禪)과 교(敎)의 큰 도량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일주문 현판에 적힌 '선림교해만화도량'이라는 글귀가 바로 이런 전통을 보여 줍니다.

절 안의 유교식 사당, 표충사

대흥사에는 절 안에 유교식 사당이 있다는 아주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표충사(表忠祠)입니다. 1788년(정조 12) 대흥사의 승려 계홍과 천묵 등이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는 곳이니 사액을 내려 달라고 조정에 호소했고, 정조가 직접 '표충사'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이듬해인 1789년 사당이 세워지고 예관이 파견되어 국가 제향이 이루어졌습니다.

표충사에는 서산대사와 제자 사명대사 유정, 처영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사당은 1836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860년 무렵 원래 자리로 다시 옮겨졌고, 담장 안에 사당·조사전·비각·내삼문 4동이 들어서 있습니다. 비각에는 1791년의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와 1792년의 표충사건사적비가 나란히 서 있으며, 내삼문에는 '예제문(禮齊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표충사는 1976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산대사 관련 유물 가운데 1602년 서산대사를 임명한 교지와 정조의 친필 화상당명은 보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로, 현재 남아 있는 서산대사의 유일한 친필로 알려진 『정선사가록』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흥사는 지금도 서산대사를 기리는 서산대재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국보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천불전

대흥사에서 가장 귀한 문화유산은 국보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입니다. 본사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올라가는 북미륵암 용화전 안에 있으며, 고려 전기에 높이 약 8m의 자연 암벽에 새긴 불상입니다. 1963년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보호각인 용화전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가려져 있던 전체 모습이 드러나면서 2005년 9월 국보 제308호로 승격되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본존불 높이만 485cm에 이르고, 공양하는 천인상이 함께 새겨진 독특한 모습이 고려 전반기에 거의 유일한 예라고 평가했습니다.

남원 구역의 천불전(보물)도 꼭 둘러볼 만합니다. 1811년 화재 뒤 1813년에 다시 지은 건물로, 안에는 표정이 모두 다른 천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에는 경주에서 만든 천불을 배 두 척에 실어 오다가 한 척이 풍랑을 만나 일본까지 떠내려갔다 돌아왔고,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이 일본에 다녀온 불상에 '일(日)' 자를 표시하도록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대웅보전 안의 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은 서산대사의 의발이 모셔진 뒤인 1612년 무렵 조성된 대형 불상으로, 조각승 10명과 38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현판, 초의선사의 일지암

대웅보전에 걸린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이고, 왼편 백설당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1840년 제주도로 유배 가던 추사가 대흥사에 들러 이광사의 현판을 조선의 글씨를 망친 글씨라며 떼게 하고 자신의 글씨를 써 주었다가, 유배에서 풀려 돌아가는 길에 사과하며 다시 걸게 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중앙일보 기고 등에서는 이 이야기가 근거 없는 전설이라는 반론도 있으니, 재미있는 전해 오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두 사람의 글씨를 가까이에서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추사가 대흥사를 찾은 이유는 동갑내기 벗 초의선사 의순(1786~1866)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초의선사는 대흥사의 13대 종사로, 39세에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머물며 『동다송』과 『다신전』을 남겼습니다. 차와 선이 하나라는 다선일미 사상을 정립해 차의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정약용에게 시와 주역을 배우고 김정희와 평생 교류했습니다. 대흥사 경내 동다실은 일반인도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흥사 여행 전에 알아 두면 좋은 점

주소는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입니다. 경내는 금당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 천불전·표충사·대광명전이 있는 남원으로 나뉘어 있어, 다리를 건너며 여러 영역을 차례로 둘러보는 구조입니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은 이를 계곡을 따라 네 영역이 공존하는 '계류형 산사'의 대표 사례로 설명합니다. 국보 마애불을 보려면 북미륵암까지 왕복 산행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것이 좋고, 일지암과 승탑 58기·탑비 18기가 모인 승탑원도 함께 둘러보면 대흥사의 긴 역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관람 시간과 입장료, 템플스테이 일정은 방문 전 대흥사 공식 안내를 꼭 확인하세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륜산 대흥사」·「표충사」·「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의발 등 유물 일괄」·「의순」, 디지털해남문화대전 「세계유산 대흥사와 서산대사」·「해남 대흥사 대웅보전」·「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설명 및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국보 지정 보도자료, 불교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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