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김천 직지사 — 손가락으로 가리킨 황악산의 천년 고찰, 천왕문 앞 돌 위에서 잠든 소년 사명대사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천 직지사(直指寺)는 418년(신라 눌지왕 2)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황악산의 천년 고찰로, 임진왜란의 승병장 사명대사가 출가한 절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입니다.** 주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이며, 보물 대웅전과 천 분의 작은 부처님을 모신 비로전(천불전),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사명각을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산자락이 조금씩 붉게 물드는 계절이면, 오래된 절 마당의 돌 하나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김천문화대전,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손가락 하나로 이름을 얻은 절과 그 절 앞 돌 위에서 잠들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드리려 합니다.

'곧을 직, 손가락 지' 이름에 담긴 세 가지 이야기

직지사라는 이름에는 세 가지 설이 전합니다. 첫째는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선산(지금의 구미)에 도리사를 세운 뒤 멀리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해서 '곧을 직(直)'과 '손가락 지(指)'를 따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지털김천문화대전은 아도화상이 417년 신라 최초의 절로 도리사를 세우고, 이듬해인 418년 직지사를 창건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둘째는 고려 초 능여대사가 절을 다시 지을 때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터를 재었기 때문이라는 설이고, 셋째는 선종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곧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본래 성품을 보면 부처가 된다는 말에서 왔다는 설입니다. 어느 쪽이든 '곧장 가리킨다'는 뜻이 이 절의 얼굴이 된 셈입니다.

절을 품은 황악산(黃嶽山)이라는 이름에도 뜻이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청·황·적·백·흑 다섯 빛깔 가운데 누런 황(黃)이 가운데를 뜻하는데, 직지사가 우리나라 한가운데에 자리해 황악산이라 불렀고 예로부터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어 왔다고 소개합니다. 정상인 비로봉에 오르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니, 그야말로 삼남의 한복판에 선 절입니다.

아도화상에 대해서도 여러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를 전하러 신라에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선현(지금의 선산) 모례라는 사람의 집에 숨어 지냈고, 병든 공주를 향을 피워 낫게 한 인연으로 포교를 허락받았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 등에 전합니다.

천년을 이어 온 중창과 시련의 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직지사는 645년 자장율사가 중창하고 930년 천묵대사가 중수했으며,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능여대사가 태조 왕건의 도움을 받아 크게 중창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대장전비에는 이 절 대장전에 금 글씨로 쓴 경전(금자사경) 593함이 있었다는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1399년 중건과 1488년 학조대사의 중수가 이어졌고, 정종 임금의 태(胎)를 절 북쪽 봉우리에 모시면서 태실을 지키는 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596년 왜병이 불을 질러 43동의 건물 가운데 천불전·천왕문·자하문만 남고 모두 불타 버렸고, 법당 앞의 큰 5층 목탑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절은 1602년부터 70여 년에 걸쳐 다시 일어섰습니다. 1681년 조종저가 쓴 사적기에는 당시 규모가 8전·3각·12당·3장·4문에 정실만 352칸, 부속 암자가 26곳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1805년 이후 한동안 쇠락했지만, 현대에 들어 1966년부터 1981년 10월까지 10동을 새로 짓고 10동을 옮겨 세우고 9동을 고치는 큰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천왕문 앞 돌 위에서 잠든 소년, 사명대사

직지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사명대사 유정(1544~1610)입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13세 무렵 김천에 머물던 황희 정승의 현손 황여헌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열다섯에 어머니를, 이듬해 아버지를 잃고 방황했다고 합니다.

디지털김천문화대전에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직지사에 들른 소년이 천왕문 앞 은행나무 그늘의 돌 위에서 낮잠이 들었습니다. 같은 시각 참선하다 잠깐 졸던 주지 신묵대사는 황룡이 은행나무를 감싸고 있는 꿈을 꾸었고, 놀라 달려가 보니 한 아이가 돌 위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대사는 그 아이를 제자로 거두었고, 그가 바로 훗날의 사명대사였습니다. 은행나무는 1800년 만세루 화재 때 사라졌지만, 그 돌은 지금도 금강문과 천왕문 사이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출가 나이는 자료에 따라 15세 또는 16세로 조금 다르게 전합니다. 사명대사는 18세에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으며, 그때 "열다섯에 집을 나서 서른 되어 돌아오니"로 시작하는 시 「귀향」을 남겼습니다. 뒤에 서산대사의 제자가 된 그는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이끌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포로들을 데려오는 데 힘썼습니다. 1787년 세워진 사명각에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꼭 보고 와야 할 전각과 문화유산

대웅전은 1735년 태감이 중건한 건물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앞뜰에 삼층석탑 두 기가 나란히 놓인 배치가 특징이고,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불상을 모신 수미단(2015년)과 영조 20년에 조성된 삼존불탱화(1980년)도 각각 보물입니다.

비로전은 천불전이라고도 부르며, 경잠 스님이 경주 옥돌로 만든 천 분의 작은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벌거벗은 아기 모습의 불상이 하나 있는데, 처음 들어가 단번에 그 불상을 찾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와 많은 분이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본다고 합니다.

이 밖에 통일신라 9세기 무렵 작품으로 보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높이 161cm)은 성보박물관에서 늘 만날 수 있고, 대웅전·비로전·청풍료 앞의 삼층석탑과 2019년 보물로 지정된 괘불도도 직지사의 자랑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위치·템플스테이

직지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 황악산 기슭에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운수암·백련암 두 부속 암자와 62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입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는 직지사가 2002년 주한 외국인 대사들을 초청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공식 개최했다고 소개하는데, 지금도 체험형과 휴식형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1994년 완공된 직지사 최대 건물인 만덕전과 3층 규모의 설법전이 주로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쓰입니다. 정확한 일정과 비용은 직지사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손가락 하나로 이름을 얻고, 돌 위에서 잠든 소년을 큰스님으로 키워 낸 절. 이번 가을, 황악산 직지사의 천왕문 앞 돌에 잠시 앉아 쉬어 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악산 직지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538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신라 불교의 성지, 직지사」 https://www.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008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아도화상」 https://www.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880 , 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 「직지사」 https://access.visitkorea.or.kr/ms/detail.do?cotId=7936ea9b-908c-42a5-8ad3-2bf82c41ea84 , 위키백과(한국어) 「직지사」 https://ko.wikipedia.org/wiki/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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