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일화

[광고] 창귀 뜻 — 호랑이에게 죽은 넋이 범의 앞잡이가 된다는 귀신, 『호질』의 굴각·이올·육혼과 '세 번 부르면 대답하지 말라'는 산골 금기, 무당이 원혼을 달래는 까닭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4
창귀 뜻 — 김홍도 「송하맹호도」, 소나무 아래 조선 호랑이
그림: 김홍도 「송하맹호도」,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 창귀 뜻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넋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그 호랑이의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꾀어 바쳐야만 풀려난다고 믿은 귀신'입니다. 한자로는 倀鬼라 쓰고, 중국 당나라 소설집 『전기』에 처음 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유몽인의 『어우집』, 박지원의 「호질」, 강원 산간의 호식총 풍속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광고] 이 글은 김포에 신당을 둔 퇴마전문 무당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님의 광고 의뢰를 받아 신이말했다 운영진이 작성했습니다. 창귀에 관한 설명은 디지털삼척문화대전 「호식총」, 디지털영월문화대전 「직동리 호식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질」·「범굿」·「호랑이」, 위키백과 「창귀」,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주간경향 기사에 공개된 내용만 옮겼습니다. 광고주의 상담료나 후기는 공개 자료가 없어 적지 않았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은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옛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호랑이의 이빨만이 아니었습니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은 죽어서도 편히 떠나지 못하고 범의 심부름꾼이 된다는 믿음, 바로 창귀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웹소설이나 노래 제목으로 이 이름을 처음 접한 분도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창귀가 어떤 귀신인지, 문헌과 산골 마을에는 어떻게 전해 왔는지, 그리고 무당이 원혼을 달래는 굿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차례로 정리합니다.

그림: 김홍도(1745~1806?) 「송하맹호도」, 비단에 채색,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File:Songhamaenghodo.jpg). 소나무 아래에서 정면을 노려보는 조선 호랑이의 모습입니다.

창귀 뜻 — 범에게 붙잡힌 넋, 저승 대신 호랑이 곁에 남다

위키백과 「창귀」 항목은 창귀를 중국과 한국 전승에 함께 나오는 귀신으로 소개합니다. 호랑이에게 살해되어 귀신이 된 존재로, 그 호랑이의 노예가 되어 늘 곁에 붙어 다니며 시중을 들고, 먹잇감을 찾아 길을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당나라 배형이 엮은 소설집 『전기(傳奇)』이고, 이후 『태평광기』 같은 중국 설화집에도 실렸다고 합니다.

우리 땅에서는 이 믿음이 훨씬 구체적인 풍속으로 이어졌습니다. 디지털삼척문화대전 「호식총」 항목에 따르면 호환을 당한 사람의 영혼은 죽어서도 호랑이의 부림을 받는 딱한 처지가 되고, 다른 사람을 유인해 바쳐야만 창귀 신세를 면하고 보통의 귀신이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넋이 산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물귀신 이야기와 닮은 구조입니다.

무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넋을 원혼이라 부르고 굿으로 저승길을 열어 주려 한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한 죽음은 산 사람 곁에 머문다고 본 것이지요. 망자를 저승으로 모셔 가는 천도굿의 실제 모습은 서울새남굿 — 바리공주가 망자를 저승길로 모셔 가는 천도굿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귀가 사람을 꾀는 방식 — 가족부터 찾아가고, 이름은 세 번만 부른다

삼척 지역 기록에는 창귀에게 홀리지 않으려고 전해 온 이야기가 여럿 실려 있습니다. 첫째, 창귀는 희생자를 찾을 때 가족과 인척 순으로 찾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사돈의 팔촌'과도 혼인을 맺지 않았고, 이렇게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자리를 바꾸는 일을 '다리 놓기' 또는 '사다리'라 불렀습니다.

둘째, 창귀는 신 것을 좋아해 매실과 소귀나무 열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소라와 골뱅이도 좋아한다고 전합니다. 셋째, 창귀는 늘 서럽게 울며 슬픈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산 사람이 까닭 없이 서럽게 울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 창귀가 씌었다고 여겼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금기는 이름 부르기입니다. 산간 마을에서는 밤에 창밖에서 누가 부르면 네 번째에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창귀는 딱 세 번까지만 사람 이름을 부르는데, 그 안에 대답하면 꼼짝없이 홀려 범 앞으로 걸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깊은 산골에서 밤길과 낯선 부름을 경계하라는 생활의 지혜가 귀신 이야기에 담긴 셈입니다.

『호질』 속 굴각·이올·육혼 — 연암이 그린 창귀의 세 등급

창귀를 가장 생생하게 그린 우리 고전은 박지원의 「호질(虎叱)」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호질」을 박지원이 지은 조선 후기 한문 단편소설로, 『열하일기』 「관내정사」에 실려 있다고 설명합니다. 위선적인 선비 북곽선생을 호랑이가 꾸짖는 풍자 우언으로 유명하지만, 그 첫머리는 호랑이와 창귀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원문에 따르면 범이 처음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굴각(屈閣)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며,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솥전을 핥게 합니다. 두 번째로 먹은 사람의 창귀는 이올(彛兀)이 되어 범의 볼에 붙어 높은 곳에서 망을 보고, 골짜기에 함정이나 쇠뇌가 있으면 먼저 가서 풀어 둡니다. 세 번째 창귀는 육혼(鬻渾)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 생전에 알던 친구들의 이름을 줄줄이 일러 바친다고 했습니다.

동아대 석당논총에 실린 연구는 이 세 창귀가 등급처럼 나뉘어 있고, 추천하는 저녁거리도 아이, 의원과 무당, 양반 순으로 높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무당과 의원을 권하자 범이 못마땅해하는 대목은 당시의 위선을 꼬집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다른 연구는 창귀를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호식당한 힘없는 백성의 상징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창귀 이야기가 생긴 배경 — 조선의 호환과 착호갑사

창귀라는 귀신이 이토록 구체적으로 전해진 데에는 현실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주간경향 기사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에 남은 호환 기록만 635건에 이르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헌강왕 11년(885) 호랑이가 궁궐 마당까지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실록위키 「착호군」 항목은 조선 건국 초 1년 동안 경상도에서만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조정은 호랑이를 잡는 전문 부대까지 두었습니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착호갑사는 세종 3년(1421) 정원 20명으로 조직을 갖춘 뒤 점점 늘어나 『경국대전』에서는 440명으로 정해졌습니다. 활이나 창으로 호랑이 두 마리를 잡은 사람은 시험 없이 뽑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손쓸 틈 없이 닥치는 죽음을 사람들은 '팔자'와 '창귀'라는 말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 조상은 호랑이를 산을 다스리는 산신의 사자로 모시기도 했습니다. 두려움과 공경이 한 동물에게 함께 얹힌 셈이지요. 절의 산신각에 호랑이가 그려지는 이유는 산신각 기도 뜻과 방법 — 산신각·칠성각·삼성각 차이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창귀를 가두고 달래던 법 — 호식총과 동해안 범굿

창귀가 다시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는 장례가 강원 산간의 호식장(虎食葬)입니다. 디지털영월문화대전 「직동리 호식총」에 따르면 시신을 화장한 재 위에 돌무덤을 만들고 시루를 엎은 다음, 하늘을 뜻하는 시루 구멍에 쇠꼬챙이를 꽂고 돌로 눌렀습니다. 창귀가 시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고, 태백산을 중심으로 이런 무덤이 200여 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바닷가 마을에는 굿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굿」 항목은 동해안 별신굿의 한 거리인 범굿이 호식을 면하려는 기원에서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무당이 호랑이 탈을 쓰고 나오면 포수 역의 무당이 이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마을 대표가 그 가죽을 사서 불에 태웁니다. 사전은 이 굿이 호랑이를 잡는 일보다 호랑이에게 물려 간 영혼을 위로하던 신앙에서 나왔다고 보았습니다.

무덤으로 가두든 굿으로 달래든, 핵심은 떠나지 못한 넋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오늘날 신점이나 점집에서 '조상 중에 객사한 분이 있다'는 공수를 듣고 걱정하는 분이 있는 것도 이런 오랜 생각이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말을 들었다고 바로 큰 굿을 정할 필요는 없고, 무엇을 왜 하는지 충분히 묻는 것이 먼저입니다.

[광고] 백호할아버지를 모시는 퇴마전문 무당 —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호랑이는 창귀 이야기에서는 두려운 존재지만, 무속에서는 잡귀를 물리치는 수호신으로도 모셔집니다. 이번 글의 광고주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무당은 몸주신으로 백호할아버지를 모시며, 배너에서 스스로를 퇴마전문 무당이라고 소개합니다. 호랑이 신령을 모시는 무당이 원혼과 잡귀 이야기를 다루는 셈입니다.

신당 주소는 김포대로 3023번길 82, 상담 전화는 010-2300-7167입니다. 굿과 신당 모습은 공식 유튜브(https://www.youtube.com/@ganghwadoryeong)에서 볼 수 있고, 연락처는 강화도령 김재정 전화점사 카드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퇴마 무당을 고를 때 확인할 점은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퇴마 무당 안내를 참고하시고, 상담이나 굿을 정하기 전에는 비용과 절차를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디지털삼척문화대전 「호식총」 https://samcheok.grandculture.net/samcheok/toc/GC06701112 , 디지털영월문화대전 「직동리 호식총」 https://yeongwol.grandculture.net/yeongwol/toc/GC0830061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질」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871 , 「범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553 , 「호랑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729 , 위키백과 「창귀」 https://ko.wikipedia.org/wiki/%EC%B0%BD%EA%B7%80 , 우리역사넷 착호갑사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40_0050_0050_0020_0010 , 실록위키 「착호군」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C%B0%A9%ED%98%B8%EA%B5%B0(%E6%8D%89%E8%99%8E%E8%BB%8D) , 주간경향 「용맹스러운 호랑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201211522231 , 박재익 「「虎叱」 서두의 창귀의 등급과 기능」(석당논총 63), 강화도령 유튜브 https://www.youtube.com/@ganghwadoryeong
창귀와 호식총 이야기는 옛 민간신앙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 자료입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는 병원과 전문 상담을 먼저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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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참고: 디지털삼척문화대전 「호식총」, 디지털영월문화대전 「직동리 호식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굿」, 위키백과 「창귀」, 우리역사넷 착호갑사, 주간경향 「용맹스러운 호랑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강화도령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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