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칠성신(칠성님)은 하늘의 북두칠성을 신으로 모신 존재로, 우리 민간신앙과 무속에서 비를 내려 농사를 돕고, 사람의 수명을 늘려 주며, 재물과 소원성취를 관장한다고 믿어 온 신입니다. '칠성님께 명(命)을 빈다'는 말처럼 특히 아이의 무병장수를 비는 대상이었고, 무당이 큰굿 가운데 한 거리로 올리는 칠성굿과 사찰의 칠성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장독대 옆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비비던 모습, 한 번쯤 드라마나 할머니 이야기 속에서 보셨을 거예요. 그 기도의 상대가 바로 칠성님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김제문화대전의 설명을 바탕으로, 무당과 굿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칠성신을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칠성신은 어떤 신일까 — 북두칠성을 모신 하늘의 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칠성을 "비 또는 인간의 수명과 재물을 관장한다는 신"이라고 정의합니다. 별을 신앙하는 일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인류에게 꽤 보편적인 현상인데, 우리 민간신앙에서는 다른 별보다 유독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해요. 백과사전은 이것이 도교의 칠성신앙, 그리고 불교의 칠원성군(七元星君)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봅니다.
북두칠성은 '하늘의 목구멍과 혀(天之喉舌)'라는 옛 표현처럼 하늘을 상징하는 별로 여겨졌습니다. 하늘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에서, 칠성신은 사람의 운명과 재수, 그리고 농사에 꼭 필요한 비까지 맡은 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기록으로 본 칠성신앙 — 고려의 기우제와 「노무편」
칠성을 모신 기록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분명하게 보입니다. 조정에서 태일(太一)에게 제사할 때 칠성신을 함께 모셨고, 태일초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점에서 칠성신이 비를 비는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이렇게 기우제에서 칠성신을 모시는 관행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랫동안 이어졌어요.
무속 쪽 기록도 있습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장시 「노무편(老巫篇)」에는 늙은 무당이 칠원성군을 모셨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백과사전은 이를 근거로 적어도 고려 말에는 무속에서 칠성을 신으로 모셨다고 봅니다. 궁중의 의례가 자연스럽게 민간으로 번져 나갔을 것이라는 추측도 함께 적혀 있어요.
칠성님의 세 가지 일 — 비, 수명, 재물
백과사전은 오늘날 민속에 남은 칠성신의 기능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비입니다. 칠성신은 물로 상징되고 비를 내리는 신으로 믿어졌어요. 농사를 짓고 살던 우리에게 이보다 중요한 신은 드물었겠지요. 칠석(七夕)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이 믿음과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둘째는 수명입니다. 칠성신은 병 없이 오래 살도록 지켜 주는 신, 특히 어린아이의 목숨을 지켜 주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남두칠성과 북두칠성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곳에 단명할 운명을 타고난 소년이 찾아가 부탁했더니, 북두칠성이 수명을 늘려 주었다는 설화가 전해져요. 백과사전은 이 이야기가 원래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셋째는 재물과 재능입니다. 농사나 고기잡이가 잘되기를, 재주가 뛰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기를 칠성님께 빌었고, 조선 태조가 소원을 이루려고 칠성에게 빌었다는 설화도 전해집니다. 백과사전은 이렇게 한 신이 여러 일을 맡은 것을, 신의 기능이 아직 잘 나뉘지 않은 복합적인 모습으로 해석합니다.
무당이 올리는 칠성굿 — 지역마다 다른 모습
칠성굿은 칠성신을 모셔 수명장수를 비는 굿거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제주도를 빼면 칠성굿은 따로 떨어진 굿이 아니라 큰굿 안의 한 순서(제차)로 행해지며, 전국에 고루 전승됩니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무당이 장삼을 입고 가사를 메고 염주를 건 차림으로 수명장수를 비는 염불과 덕담을 하고 바라춤을 춥니다. 굿 끝에는 불로장생의 영약을 판다는 '약팔이' 놀이가 이어진다고 해요. 경기도와 강원도의 강신무들은 제석굿이나 불사굿을 하면서 칠성신을 함께 모십니다.
세습무 지역에서는 노래로 신의 내력을 풀어 주는 서사무가가 중심입니다. 경기 남부 도당굿에서는 남자 무당인 화랭이가 장구 반주에 맞춰 '시루말'이라 불리는 칠성풀이를 부르고, 제주도의 칠성제는 반드시 밤에 굿을 하며 종이고깔인 송낙 일곱 개를 접어 칠원성군을 모십니다. 독경무들은 안택굿 때 북두칠성경을 외워 수명장수를 빈다고 합니다.
칠성풀이 — 일곱 아들이 별이 된 이야기
칠성신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를 풀어 주는 노래가 칠성풀이입니다. 전라북도와 충청 이남에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지하궁의 임자부인이 천하궁의 칠성님과 혼인해 불공 끝에 아들 일곱을 낳습니다. 칠성님이 하늘로 올라간 사이 임자부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뒤에 들어온 옥녀부인이 시샘 끝에 일곱 아들을 해치려 하지만 아들들은 위기를 넘깁니다. 결국 일곱 아들은 저마다 칠성신에 봉해져 자손의 복과 수명장수를 맡게 되지요.
디지털김제문화대전은 이 유형의 무가가 함흥의 「살풀이」, 평양의 「성신굿」, 제주도의 「문전본풀이」처럼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해 전국에 퍼져 있다고 소개합니다. 또 이야기 속에서 돈에 매수된 점쟁이가 거짓 점괘를 내놓는 대목이 있어, 신화라기보다 악행을 벌하는 권선징악의 교훈이 짙게 드러난다고 해석해요. 점을 보는 사람도, 점을 치는 무당도 마음에 새겨 둘 만한 대목입니다.
장독대 칠성단에서 사찰 칠성각까지
칠성신앙은 집 안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호남 지역에서는 집 뒤뜰 장독대 한쪽을 칠성단이나 칠성당 자리로 삼아 정화수를 바치고, 아이를 얻게 해 달라고, 아이가 오래 살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정화수를 신체로 삼는 것은 칠성신이 물과 비의 신이라는 성격을 보여 준다고 해요. 제주도에서는 칠성신이 뱀으로 상징되어 곡식을 두는 고팡에 모시는 '안칠성', 집 뒤 공터에 주저리를 덮어 모시는 '밧칠성'으로 집안의 재물을 지키는 신이 되었습니다.
이 신앙은 절 안으로도 들어갔습니다. 사찰 경내 한쪽의 작은 칠성각(칠성당)에는 칠성과 산신 그림이 모셔져 있고, 수명장수를 비는 명다리가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무신도 속 칠성신은 모자 쓴 이마에 별을 상징하는 둥근 빛을 박은 일곱 명의 점잖은 남자로 그려집니다. 세상을 떠난 이를 눕히는 받침을 '칠성판'이라 부르는 것도 사람의 명을 관리하는 칠성의 의미와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밤하늘의 국자 모양 일곱 별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칠성님께 명을 빌던 옛사람들의 마음은 결국 "우리 아이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하는 아주 평범한 바람이었어요. 무당의 굿이나 신점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 안에 담긴 이런 소망의 역사부터 알아 두시면 훨씬 깊이 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490 , 「북두칠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655 , 「칠성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493 , 「칠성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494 , 디지털김제문화대전 「칠성풀이」 http://www.grandculture.net/gimje/toc/GC026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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