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례 뜻은 '음력 섣달그믐날 궁중에서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행하던 궁궐 의례'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례」). 구나(驅儺)·대나(大儺)·나희(儺戱)라고도 부르며, 고려 정종 6년 무렵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까지 이어졌습니다. 황금빛 눈이 넷 달린 탈을 쓴 방상시가 앞장서 귀신을 쫓았고, 뒤로 갈수록 광대 놀이로 바뀌었습니다.
[광고] 이 글은 퇴마전문 무당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님의 광고 의뢰를 받아 신이말했다 운영진이 작성했습니다. 나례의 역사와 절차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례」·「나례가」·「나례도감」·「방상시」 항목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 「나례(儺禮)」에 실린 내용만 옮겼습니다. 광고주 정보는 배너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것뿐이며, 상담비나 후기는 공개 자료가 없어 적지 않았습니다.
연말이 되면 '묵은 액은 올해 안에 털고 가야 한다'며 점집에 신점을 보러 가거나 무당에게 액막이 굿을 묻는 분이 늘어납니다. 그 마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궁궐에서 나라 단위로 벌이던 큰 퇴마 의식, 나례가 나옵니다. 아래에서는 나례를 언제 왜 했는지, 고려 기록에 남은 행렬의 모습, 가면과 붉은 옷과 네 눈의 의미, 조선 궁중에서 나례가 쓰인 세 가지 자리와 처용무, 그리고 의식이 놀이로 바뀌어 민간에 남은 흔적까지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처용 이야기 자체가 궁금하다면 처용설화 정리 글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그림: 『악학궤범』(1493)에 실린 처용관복(處容冠服) 그림 — 조선 궁중 나례에서 방상시의 구나 뒤에 추던 처용무의 가면과 사모.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eoyong_in_the_Akhak_Gwebeom.jpg )
나례는 언제, 왜 했을까
백과사전은 나례를 섣달 세밑 풍속과 함께 설명합니다. 세밑이 되면 집집마다 부뚜막의 헌 곳을 새로 바르고 거름과 가축우리를 치우며 집 안을 깨끗이 정돈했습니다. 자정 무렵에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폭죽을 터뜨려 집안의 잡귀와 사귀(邪鬼)를 몰아냈습니다. 새해를 깨끗한 상태로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궁궐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대궐 안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동시에 벽사(辟邪)를 위해 나례를 거행했는데, 궁이 깨끗해야 나라 전체가 깨끗해지고 그래야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한 집안의 묵은 액을 털어 내는 일을 나라 규모로 키운 셈입니다.
연말에 귀신을 쫓는 풍속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후한서』 예의지에는 납일 하루 전에 내시 집안 자제 가운데 10~12세 아이 120명을 뽑아 진자(侲子, 아이 초라니)로 삼아 큰 나례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궁중 나례는 고려 정종 6년 무렵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백과사전의 설명입니다. 실록사전은 정확한 전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사』의 대나 기록으로 보아 고려 때부터 궁중 나례가 있었다고 정리합니다.
고려 『계동대나의』에 남은 나례 행렬
『고려사』 군례조의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는 행렬 구성을 꽤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12세 이상 16세 이하의 사람을 뽑아 진자로 삼고 가면을 씌운 뒤 붉은 고습(무릎까지 오는 덧옷)을 입혔습니다. 24명이 한 대(隊)를 이루고 여섯 명씩 한 줄로 섰으며 대개 두 대였습니다.
여기에 붉은 모자와 소창옷 차림으로 채찍을 쥔 집사자 12명, 공인(工人) 22명이 따랐습니다. 공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방상시(方相氏)로, 황금색 눈이 네 개 달린 가면에 곰 가죽을 걸치고 검정 웃옷과 붉은 치마를 입은 채 오른손에 창, 왼손에 방패를 들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주문을 외우는 창수(唱帥)로, 가면과 가죽옷 차림에 몽둥이를 쥐었습니다.
소리를 맡은 고각군은 20명이 한 대였습니다. 깃대 넷, 퉁소 넷, 북 열둘로 짜였고, 이렇게 요란한 행렬로 악귀를 궁 밖으로 몰아낸다고 믿었습니다. 희생으로는 닭 다섯 마리를 잡아 역기(疫氣)를 쫓았는데, 정종이 이를 애통하게 여겨 다른 물건으로 대신하게 하자 황토로 빚은 소 네 마리를 썼다는 기록도 함께 전합니다.
가면·붉은 옷·네 눈, 귀신이 무서워한 세 가지
백과사전은 이 의식의 가면, 붉은 옷, 방상시, 노래와 춤이 모두 잡귀를 몰아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풀이합니다. 옛날부터 가면에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여겼고, 붉은색은 양(陽)의 색이라 음귀(陰鬼)를 물리친다고 믿었습니다. 무당이 굿에서 붉은 옷과 팥을 쓰는 것과 같은 계열의 생각입니다.
방상시의 황금빛 네 눈은 일부러 비정상적으로 과장한 모습입니다. 사람보다 눈이 많은 존재를 보여 줘서 잡귀가 겁을 먹고 달아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방상시」 항목은 역귀를 쫓는 방법으로 때리기(구타법), 불(화기법), 찌르기(자상법), 묶기(봉박법), 제물(공물법), 부적(주부법) 등 열한 가지를 꼽은 뒤, 방상시는 색깔로 위협하는 오감법(五感法)에 가까운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 궁중 구나 때는 관상감이 주관했고, 방상시 넷을 중심으로 붉은 옷에 가면을 쓴 지군 다섯, 녹색 옷의 판관 다섯, 조왕신으로 분장한 넷, 초라니 여럿, 십이신과 악공 10여 명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오늘날 퇴마 굿에서 신장(神將)을 불러 잡귀를 몰아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성격이 쉽게 이해됩니다.
조선 궁중 나례의 세 갈래와 처용무
조선왕조실록사전은 조선 궁중 나례를 세 가지로 나눕니다. 섣달그믐(제석)에 벽사와 구복을 위해 하던 나례, 임금이 부묘(삼년상을 마친 선왕·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를 마치고 환궁할 때의 나례, 중국 사신을 맞는 칙사연의 나례입니다. 벽사 나례에는 십이지신 탈을 쓴 진자와 악공이 나왔고, 나머지 두 자리에서는 산대를 세우고 채붕을 친 뒤 잡기를 공연했기 때문에 나례가 산대희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섣달그믐 나례의 순서는 『악학궤범』 권5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믐 하루 전날 5경 초에 악사가 여기(女妓)와 악공을 데리고 대궐에서 연주를 시작하면, 방상시 네 사람이 먼저 잡귀를 몰아내는 구나를 행합니다. 그다음 처용무를 두 번 추는데, 처음에는 처용무만 추며 처용가를 부르고, 두 번째에는 학과 연화대 의물을 갖춰 학연화대처용무를 함께 춥니다.
처용무는 다섯 빛깔 옷을 입은 무동이 처용 탈을 쓰고 동서남북과 가운데 다섯 방위에 벌려 서서 추는 춤으로, 역시 벽사에 쓰였습니다. 나례 업무는 임시 관청인 나례도감이 맡았고 광해군 때는 상설 기관인 나례청을 두었지만, 인조가 폐단을 들어 나례청을 없앤 뒤로는 관상감이 맡았습니다(「나례도감」 항목).
놀이가 된 나례, 민간과 굿판에 남은 흔적
시간이 흐르며 나례의 종교성은 옅어지고 놀이 성격이 짙어졌습니다. 광대, 재인, 창우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연희패가 맡게 되면서 악공의 반주와 기녀의 춤이 더해졌고, 사람들은 이것을 나희나 잡희라고 불렀습니다. 양란 뒤 규모가 줄었고, 정조 대 이후에는 공식적인 나례희가 사라져 지방 관아에만 남았다고 실록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민간에는 소리와 불로 귀신을 쫓는 습속이 이어졌습니다. 『동국세시기』는 제석 전날 대궐에서 대포를 쏘는 연종포(年終砲), 불화살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일을 대나의 유풍이라 했습니다. 『열양세시기』에는 지방 관청에서 화랑이(우인)들이 탈을 쓰고 바라를 울리며 막대기를 휘두르고 무엇을 쫓는 시늉을 하며 몇 바퀴 돌다 나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함경도에서는 얼음 등을 켜 놓고 밤새 징과 북을 치며 나희를 했고, 의주에서는 동네마다 딱총을 놓았습니다.
굿과의 연결도 뚜렷합니다. 고려 속악 「나례가」는 제목으로 보아 나례 때 부른 무가 계통의 노래로 보이며, 가사에는 나령공 댁에서 광대가 금실로 수놓은 무복을 입고 산굿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백과사전은 궁중 의식은 사라졌지만 섣달그믐에 대청소를 하고 밤에 폭죽을 터뜨려 새해를 정하게 맞으려는 유풍은 지금도 전해진다고 맺습니다.
[광고] 묵은 액을 털고 새해를 맞고 싶을 때 — 퇴마전문 무당 강화도령 김재정
나례가 '묵은해의 잡귀를 남겨 두지 말자'는 의식이었던 것처럼, 연말에 집안 우환이나 반복되는 악몽 때문에 신점을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의 광고주 이북개성 강화도령 김재정 무당은 배너에 퇴마전문 무당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몸주신으로 백호할아버지를 모십니다. 신당 주소는 김포대로 3023번길 82, 전화는 010-2300-7167입니다. 굿과 신당 모습은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ganghwadoryeong)에서 볼 수 있고, 연락처는 강화도령 김재정 전화점사 카드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퇴마 무당을 고르는 기준은 퇴마전문 무당 안내 글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나례도 굿도 전통 신앙과 문화의 영역이며 효과를 수치로 입증한 자료는 없습니다. 굿이나 액막이를 권유받는다면 의례 이름과 목적, 총비용, 취소·환불 조건을 문자로 받아 두고 하루쯤 생각한 뒤 결정하세요. 몸과 마음이 오래 힘들다면 병원과 전문 상담을 먼저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325 , 「나례도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327 , 「나례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326 , 「방상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1714 , 조선왕조실록사전 「나례(儺禮)」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B%82%98%EB%A1%80(%E5%84%BA%E7%A6%AE) , 강화도령 유튜브 https://www.youtube.com/@ganghwadoryeong
나례와 굿에 관한 내용은 전통문화 참고 자료입니다. 건강과 돈이 걸린 문제는 반드시 해당 분야 전문가와 먼저 상의하세요.
👉 신이말했다 카페 가입하고 새 글 알림 받기: https://cafe.naver.com/910401
https://sinimalhaetda.com
http://pf.kakao.com/_XrLFX

![[광고] (사)충남장애인정보화협회 보령시지회 무료 정보화교육·사랑의 컴퓨터 수리 및 후원 안내 (농협 301-0342-4668-31, 예금주: 사단법인 충남장애인정보화협회, 문의 041-934-0157)](/static/ads/bradpi24_banner_wide.jpg?v=20261024)
댓글 0
댓글은 승인된 회원만 쓸 수 있어요. 로그인 ·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