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YMCA 황성기독교청년회 — 정동에서 37명으로 시작해 한국 최초 야구단을 만든 종로 청년회관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열흘쯤 뒤인 10월 28일은 서울YMCA가 문을 연 날입니다. 서울 종로2가를 지나다 보면 청옥색 타일과 세로줄 무늬가 눈에 띄는 YMCA 회관을 만나게 되지요. 그 자리에서 한국 최초의 야구단이 만들어지고, 청년들이 목공과 사진을 배우고, 3·1운동 때는 학생들이 모여 만세를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건물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기독교청년회관」 항목,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한민족독립운동사』, 그리고 중앙일보 기사를 바탕으로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로 시작된 한국 YMCA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보겠습니다.

■ 교회와는 다른 그릇이 필요했던 이유

기독교청년회(YMCA)는 1844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결성된 청년단체로, 1850년대 이후 미국에서 크게 자랐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한국에서 YMCA를 세우자는 움직임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이 "상류 지식층과 청년들에게 다가가려면 교회와는 다른 기독교 기관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1899년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 청년 150명이 서명한 진정서를 붙여 미국의 YMCA 국제위원회에 보냈습니다. 그 결과 1900년 6월부터 9월까지 중국 YMCA의 라이언(D. W. Lyon)이 서울에 와서 사정을 살폈고, 긍정적인 보고를 받은 국제위원회는 1901년 필립 질레트(Philip L. Gillett)를 창설 간사로 보냈습니다. 질레트는 먼저 배재학당 학생들로 학생 YMCA를 만들었고, 이 학생 YMCA는 1902년 세계학생기독교연맹에 가입했습니다.

■ 1903년 10월 28일 밤, 정동 서울유니온에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는 창립 당일을 헐버트(H. B. Hulbert)가 쓴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 1903년 10월호를 인용해 자세히 전합니다. 10월 28일 오후 8시, 서울 정동의 서울유니온(정동 공동서적실)에 한국인·미국인·영국인·중국인·일본인 등 5개국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헐버트가 의장으로 뽑혀 모임의 뜻을 설명했고, 게일(J. S. Gale) 목사가 헌장 초안을 읽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헌장에 서명한 사람은 정회원 28명, 준회원 9명, 모두 37명이었습니다.

이어 12명의 이사를 뽑았는데, 한국인으로는 여병현과 김필수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첫 임원을 두고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고 있는데, 백과사전은 헐버트를 초대 회장으로, 1904~1905년 임원진은 회장 게일·부회장 헐버트·총무 질레트로 소개합니다.

■ 감옥에서 나온 개화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다

황성기독교청년회가 힘을 얻은 것은 1904년 무렵입니다. 독립협회와 개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이상재·김정식·이원긍 같은 고관 출신 지식인들이 옥중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 풀려나 청년회 활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백과사전은 이들이 이후 단체의 중추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김정식은 한국인 총무로 일했고, 윤치호와 김규식은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윤치호는 1906년 이후 부회장을 맡았습니다.

청년회는 처음부터 연설회와 토론회를 열었고, 1906년에는 '황성기독교청년학관'을 세웠습니다. 1907~1908년 무렵 학관에는 낮에 중학과·일어과·영어과·목공과가, 밤에 일어과·영어과·부기과가 있었습니다. 사경회(성경 공부 모임)와 환등회(슬라이드 상영회), 운동회도 열었지요. 백과사전에 따르면 1908년경 회원은 1,160명, 학관 학생은 222명이었고, 각종 강연과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은 한 해 5만 명을 넘었습니다.

■ 종로에 세운 3층 벽돌 회관

처음 회관은 인사동의 옛 태화궁 터에 있었습니다. 「서울기독교청년회관」 항목에 따르면 청년회는 1904년 종로대로 북쪽에 땅을 마련했고, 1905년 개화파 인사 현흥택이 맞닿은 자기 땅을 기증했으며, 나머지 부지는 미국 공사 모간(E. W. Morgan)이 낸 기금으로 채웠습니다. 건축비는 미국의 백화점 경영자 워너메이커(J. Wanamaker)가 댔습니다.

공사는 1907년에 시작되었고, 그해 11월 행사에서 어린 황태자 영친왕이 '一千九百七年(일천구백칠년)'이라는 여섯 글자를 써 주었습니다. 이 머릿돌 글씨는 지금도 서울YMCA 회관 중앙 출입구 벽면에 남아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이때 고종이 1만 원의 하사금도 보냈다고 전합니다. 회관은 1908년 12월 초에 개관식을 열었는데(백과사전 두 항목이 1일과 3일로 다르게 적습니다), 강당과 운동실, 교실, 도서실, 공업실습실, 사진부, 소년부까지 갖춘 600평 규모의 3층 벽돌 건물이었습니다.

■ 야구공과 농구공으로 전한 복음

질레트는 '한국 야구·농구의 아버지'로도 불립니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예일대 시절 풋볼과 야구 선수였던 그는, 태화관 앞에서 미국인들이 캐치볼 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야구를 선교의 수단으로 삼기로 하고 미국에 장비를 주문했습니다. 1906년 3월 15일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자리인 훈련원 마동산에서 황성YMCA와 덕어(독일어)학교가 경기를 벌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야구 경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YMCA는 야구를 1905년, 농구를 1907년, 스케이트를 1908년에 처음 소개했고, 1916년에는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도 열었습니다. 2005년 한국 야구 100주년 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질레트의 외손자를 수소문해 찾아내 시구자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몸을 쓰는 일을 낮게 보던 시절, 공 하나로 청년들의 마음을 연 셈입니다.

■ 105인 사건과 '황성'이라는 이름을 잃기까지

1910년 강제 병합 뒤 청년회는 일제의 직접적인 압박을 받습니다. 백과사전은 1911년 일제가 꾸며 낸 이른바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 곧 105인 사건이 선교사·미국 교회와 가까웠던 YMCA를 겨냥한 탄압이기도 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사건으로 부회장 윤치호가 체포되었고, 사건의 전모를 기록해 해외에 알린 질레트는 결국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그는 1913년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일제는 1913년 초 친일 기독교인들을 매수해 '유신회'를 만들게 하고 청년회를 일본YMCA 아래 두려 했습니다. 그 결과 1913년 4월 이름이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로 바뀌면서, 황성기독교청년회라는 이름은 만 1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YMCA의 활동은 이어졌고, 중앙일보는 종로 회관이 1919년 3·1운동 때 학생YMCA를 중심으로 한 학생단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다고 전합니다.

1908년의 회관은 6·25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27일 불에 타 사라졌고, 1967년 4월 15일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백과사전은 오늘날 서울YMCA가 이 회관을 중심으로 청소년·시민·사회체육·사회복지·평생교육·국제교류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한편 백과사전은 황성기독교청년회가 현대 스포츠와 기술교육, 사진·환등의 보급에 큰 영향을 남겼지만, 상동청년회처럼 국권 회복에 적극 나선 단체들에 비해 계몽과 종교 활동에 치우쳤다는 평가도 함께 적어 두고 있습니다. 빛과 그늘을 함께 보는 것이 역사를 정직하게 기억하는 방법이겠지요. 10월 28일, 종로를 지나실 일이 있다면 회관 입구의 '一千九百七年' 머릿돌을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1903년부터 120년 넘게 청년들을 맞아 온 서울YMCA의 문이 거기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성기독교청년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52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기독교청년회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664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민족독립운동사』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hdsr_002_0010_0010_0030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민족독립운동사』 https://db.history.go.kr/id/hdsr_009_0020_0020_0020 , 중앙일보 「한국 농구·야구의 아버지 필립 질레트」 https://www.joongang.co.kr/article/3576088 , 중앙일보 「3·1운동 진원지, 조오련 키운 스포츠 성지…개발·보존 숙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9886 , 주간기독신문 「[이주일의역사] 황성기독교청년회 결성」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5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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