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셔우드 홀과 크리스마스 씰 — 거북선 대신 남대문을 그린 선교사 의사, 해주에서 시작된 결핵 퇴치의 작은 우표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4

두 달쯤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예전에는 12월이 되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한 장씩 사서 연하장 봉투에 붙이곤 했지요. 우표처럼 생긴 그 작은 종이가 결핵 환자를 돕는 성금이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그것을 만든 사람이 서울에서 태어난 한 선교사 의사였다는 것을 아시나요? 오늘은 국가기록원 「결핵과 크리스마스실」 기록,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아카이브의 홀 가문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리고 당시를 다룬 신문 기사와 학술 논문을 바탕으로 셔우드 홀(Sherwood Hall)과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보겠습니다.

■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 결핵으로 친구를 잃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아카이브에 따르면 셔우드 홀은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모두 미국 감리회(미감리회) 의료선교사였습니다. 어머니 로제타는 1890년 내한해 정동의 여성병원 보구녀관에서 일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김점동)를 길러 낸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아버지 윌리엄은 평양 개척 선교사로 일하며 병원과 광성학교, 남산현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1894년 11월 24일, 아들이 돌을 막 지났을 무렵 세상을 떠나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1898년에는 여동생 에디스 마가렛도 이질로 숨졌습니다. 1991년 중앙일보 부고 기사는 셔우드 홀이 소년 시절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결핵으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합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과 친구들을 잃은 슬픔이 한 사람의 평생 진로가 된 셈입니다.

■ 해주 구세요양원 — 한국 최초의 결핵 요양원

셔우드 홀은 평양외국인학교에서 자란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고, 1919년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 1923년 졸업했습니다. 1922년에는 마리안 버텀리(Marian Bottomley)와 결혼했지요. 부부는 1925년 미감리회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926년 4월 19일 내한했고, 황해도 해주의 구세병원으로 파송되었습니다.

1920~30년대 조선은 결핵이 무서운 병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중앙일보 「그때 오늘」 기사는 해마다 3만~4만 명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총독부의 대책은 가래침 뱉는 그릇을 두고 환자를 격리하라는 지시 정도에 그쳤다고 적고 있습니다. 셔우드 홀은 1928년 어머니 로제타와 미감리회 선교부의 도움을 받아 해주에 한국 최초의 결핵 요양원인 구세요양원을 세우고, 그 안에 결핵위생학교를 열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결핵을 어떻게 막는지 가르치는 일까지 함께 한 것입니다.

이 일에는 한국인 동역자도 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병서」 항목에 따르면 구세요양원 부원장 김병서는 1928년 셔우드 홀과 함께 요양원과 결핵위생학교를 세웠고, 크리스마스 실을 가져와 홀에게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32년 12월 3일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이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 거북선 대신 남대문 — 1932년 첫 씰의 사연

크리스마스 씰의 원조는 덴마크입니다. 국가기록원 기록에 따르면 덴마크의 우체국장 아이날 홀벨(Einar Holbøll)이 연말에 오가는 수많은 우편물을 보고 착안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씰을 발행했습니다. 이후 미국·스웨덴·독일 등으로 퍼졌고, 아시아에서는 1910년 필리핀, 1925년 일본이 씰을 발행했습니다.

셔우드 홀은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그림을 원했습니다. 처음 고른 도안은 거북선이었습니다. 중앙일보 기사에 인용된 그의 회고록 『닥터 홀의 조선회상』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조선 아이들은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지치지 않는다며, 거북선이 '국가의 적'인 결핵을 향해 대포를 쏘도록 그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본인 관리는 허가가 나지 않을 것이라며 불쾌해했고, 홀은 고민 끝에 도안을 서울의 남대문(숭례문)으로 바꿨습니다. 결핵을 막는 보루라는 뜻을 담아서요. 학술 논문 「일제침략기 선교사 셔우드 홀과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본 한일관계에 대한 고찰」도 첫 씰이 일본 측의 승인 거부로 거북선에서 남대문으로 바뀌었다고 정리합니다.

첫 씰의 판매 규모는 자료마다 조금 다릅니다. 1991년 중앙일보 기사는 장당 1전에 3만 5천 장이 팔려 350원이 모였다고 썼고, 대한결핵협회 사진을 실은 매일경제 기사는 한 장 2전에 모두 850원이 모였다고 전합니다. 어느 쪽이든 수만 명의 손길이 모인 작은 기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 아홉 번의 씰, 그리고 강제 출국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씰은 1932년부터 1940년까지 아홉 차례 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기운이 짙어지면서 감시도 심해졌습니다. 앞의 논문은 1940년 씰이 인쇄까지 마쳤는데도 군부가 전부 압수했고, 그 이유가 도안 속 두 어린아이, 눈 덮인 산과 마을, 서력 연도 표기 같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셔우드 홀은 간첩 혐의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1940년 부부는 결국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도로 건너가 그곳에서도 요양원을 세우고 결핵 퇴치 운동을 이어 가다 1963년 은퇴했습니다. 1934년 태어난 그날 숨진 아들 프랭크도 양화진에 묻혀 있으니, 홀 가문은 이 땅에 세 세대의 슬픔과 사랑을 함께 남긴 셈입니다.

■ 문창모 박사와 대한결핵협회로 이어진 불씨

해방 뒤 이 불씨를 다시 지핀 사람은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였습니다. 국가기록원 기록에 따르면 1949년 '한국복십자회'가 씰을 발행했고, 1952년에는 '한국기독의사회'가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으로 결핵이 크게 번지자 여러 항결핵 단체가 힘을 합쳐 1953년 11월 6일 대한결핵협회를 창립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협회가 그해 첫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1953년 협회의 첫 씰 도안은 남녀 차별을 넘어서자는 뜻을 담은 '색동저고리 소녀'였습니다.

국가기록원 뉴스레터는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학생까지 온 국민이 씰 운동에 참여했고, 모인 기금으로 X선 이동검진차를 마련해 농어촌과 섬, 탄광촌을 찾아다니며 무료 진료를 했다고 전합니다. 한 장의 씰이 결핵 환자를 일찍 찾아내는 검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 양화진에 돌아와 잠든 '크리스마스 씰의 아버지'

셔우드 홀 부부는 1984년 11월 대한결핵협회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국민훈장 모란장과 명예서울시민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9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언에 따라 유해는 서울로 돌아와 대한결핵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부모와 여동생이 잠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고, 같은 해 9월 세상을 떠난 아내 마리안도 그 곁에 묻혔습니다. 양화진 아카이브에는 지금도 1932년 첫 씰 25장 전지 등 홀 가족이 기증한 크리스마스 씰 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올해 성탄 카드를 쓸 때, 봉투 한 귀퉁이에 씰 한 장을 붙여 보면 어떨까요. 거북선 대신 남대문을 그려야 했던 한 의사의 마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정성이 그 안에 함께 담겨 있을 것입니다.

출처: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결핵과 크리스마스실」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xMas.do , 국가기록원 NEWSLETTER 제78호 https://theme.archives.go.kr/next/pages/new_newsletter/2017/html/vol_78/sub01.html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아카이브 「Hall, Sherwood」 https://yanghwajinarchives.org/s/site/item/75091 , 양화진 아카이브 「홀 가문」 https://yanghwajinarchives.org/s/site/item/75463 , 양화진 아카이브 「크리스마스 씰 시리즈」 https://yanghwajinarchives.org/s/site/hierarchy/1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병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599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결핵협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916 , 중앙일보 「[그때 오늘]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 '거북선' 도안, 일제 방해로 인쇄 못 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936827 , 중앙일보 「한국최초 X마스실 발행 셔우드 홀 박사 유골 양화진에 묻힌다」(199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53645 , 매일경제 「추억의 크리스마스 씰 변천사」 https://www.mk.co.kr/news/society/8081044 , 「일제침략기 선교사 셔우드 홀과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본 한일관계에 대한 고찰」(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3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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