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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 신당 — 무당은 왜 고려 장군을 모실까? 개성 덕물산 장군당의 신상 배치, 상산거리 공수와 '최일 장군'이라는 이름까지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6
최영장군 신당 — 무신도 「최일장군」, 칼을 들고 말을 탄 최영장군 그림
그림: 무신도 「최일장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 최영장군 신당은 고려 말 장수 최영을 신으로 모신 무당의 신당입니다. 가장 이름난 곳은 개성 덕물산 꼭대기의 '장군당'으로, 중부지방 무당들이 으뜸 성지로 여겨 내림굿을 받은 뒤 찾아가 신고하던 곳이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물산 최영 장군 사」). 무속에서는 최영을 '최일 장군'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글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덕물산 최영 장군 사」·「최영 장군신」·「상산거리」·「개성 덕물산 도당굿」·「최영 장군 설화」 항목에서 확인한 내용만 정리했습니다. 특정 무당이나 점집을 홍보하는 글이 아니며, 기도 비용이나 효험처럼 공식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은 넣지 않았습니다.

서울·경기 지역 점집에 가면 신당 벽에 말을 탄 장군이나 칼을 든 장군 그림이 걸린 것을 자주 봅니다. 그중 상당수가 최영장군입니다. 그런데 최영은 고려 말에 실제로 살았던 장수인데, 어떻게 무당이 모시는 신이 되었을까요? 아래에서는 무속에서 최영을 모시게 된 배경, 덕물산 장군당의 모습, 굿에서 최영장군을 부르는 상산거리, 무신도 속 장군의 모습, 그리고 신당을 찾을 때 알아 두면 좋은 점을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무당 신당 전반에 대해서는 무당 신당 뜻 글을, 굿의 갈래는 굿 종류 한눈에 정리 글을 함께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림: 무신도 「최일장군」 — 칼을 치켜들고 말을 탄 최영장군 그림,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neral_Choe_Yeong.jpg )

최영장군은 왜 무당의 신이 되었나 — 억울한 죽음과 원혼 신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영 장군신」 항목은 최영 장군신을 '주로 중부지방의 무속에서 장군신에 해당하는 무속신격'으로 설명합니다. 최영은 고려의 명장으로 이성계에게 패하고 억울하게 죽어 원혼이 되었기 때문에 무속의 숭배 대상이 된 듯하다고 봅니다.

같은 항목은 최영이 생전에 청렴결백해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았다는 일화가 많은 인물이었고, 죽음의 원한이 컸기 때문에 그가 죽은 경기도 고양 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 무속에서 그를 산신으로 모시게 된 것 같다고 적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위로하고자 한 원혼신앙'이 작용했으리라는 것이 백과사전의 설명입니다.

정리하면 무당이 최영장군을 모시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억울하게 죽은 큰 인물의 넋은 잘 모셔야 한다는 원혼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생전에 위엄 있던 장수이니 잡귀와 나쁜 기운을 물리칠 힘이 있으리라는 믿음입니다. 점집에서 '장군님'을 모신다고 할 때 흔히 이런 성격의 신을 가리킵니다.

개성 덕물산 장군당 — 무당들의 으뜸 성지

「덕물산 최영 장군 사」 항목에 따르면 이 사당은 개성 동남쪽 교외, 해발 200m 정도의 덕물산 꼭대기에 있었고 '장군님당' 또는 '장군당'으로 불렸습니다. 정확한 건립 연대와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덕물산에서는 예로부터 산신을 모셨는데, 최영이 처형된 뒤 그의 충의와 영험이 민간에서 추모되면서 조선 초기 이곳에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중부지역 무당들은 이곳을 으뜸가는 성지로 여겨 굿을 벌였고, 내림굿을 받아 갓 무당이 된 사람은 큰무당이 되기 위해 덕물산 장군당에 찾아가 치성을 드리고 신고했다고 합니다. 사당 바로 아래 상산동에는 광복 무렵까지 40호 정도의 마을이 있었는데, 그중 아홉 집이 무당 집으로 치성 드리러 오는 애기무당과 단골을 맞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성 덕물산 도당굿」 항목은 덕물산을 '만신의 조종(祖宗)으로 간주되는 산'이라고 표현합니다. 1931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최영을 주신으로 하는 도당굿이 열린 기록이 남아 있고, 무당패·굿중패·사당패가 함께 유가를 돌며 굿판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군당은 광복 이후 미신타파 운동으로 철거되었고, 문서와 자료는 일제강점기에 이미 일본인들이 가져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장군당 안에는 누가 모셔져 있었나 — 신상과 무신도 배치

백과사전이 전하는 장군당은 기와 건물 세 칸 규모였습니다. 당 한가운데에는 최영장군과 그의 둘째 부인이라는 여인이 실물 크기의 소상(흙으로 빚은 상)으로 모셔졌고, 오른쪽에는 장군의 딸 하나와 아들 둘, 그리고 액을 막아 주는 무신인 군웅이 무신도로 안치되었습니다. 왼편에는 별상이 아기 모습으로 용상에 자리했습니다.

벽에는 삼불제석, 칠성신, 가망부인, 용왕과 용왕부인, 송악산신, 임경업 장군 등의 무신도가 걸려 있었고, 각 무신도 위에는 청동 명두가, 아래에는 청룡도와 삼지창 같은 무구가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무당 신당의 기본 구성, 곧 주신을 가운데 모시고 여러 신령의 그림과 명두·무구를 함께 두는 방식이 이미 이곳에 다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장군당 옆에는 창부당(창겨씨당)이 있었고 마을 쪽에는 장군의 첫째 부인을 모신 부인당과 본향신으로 모신 서낭목이 있어, 무당들은 이들을 통틀어 덕물산 최영 장군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애기무당은 장군당에 치성을 드린 뒤 마지막으로 창겨씨당에 와서 치성을 올리고 앞날의 무당 운수를 점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굿에서 최영장군을 부르는 자리 — 상산거리와 공수

서울·경기 굿에서 최영장군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굿거리가 상산거리입니다. 「상산거리」 항목은 이를 중부지방 무속에서 산신을 모시는 굿거리, 달리 '산마누라거리'라고 설명하며, 기록에 따라 덕물산 산신 최영장군을 모시는 거리라고도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거리에서 무당은 붉은 갓(주립)을 쓰고 남치마나 홍치마 위에 남철릭과 구군복을 겹쳐 입고 술띠를 맨 차림으로 청룡도와 삼지창을 듭니다. 장고 앞에서 만수받이로 신을 청하고 춤을 추다 신이 내리면 공수를 주는데, 그 공수에 '덕물산에 최영장군 아니시리'라는 대목이 들어갑니다. 「최영 장군신」 항목에도 서울·경기 북부 상산거리 공수로 '나라 충신에 임장군님, 덕물산에 최일 장군 아니시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공수가 끝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명잔·복잔이라며 술잔을 돌려 신의 축복을 나누고, 마지막에는 청룡도와 삼지창을 소반 위에 세우는 '사슬세우기'를 합니다. 삼지창이나 청룡도에 제물을 꽂아 세우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굿을 보다가 무당이 장군복을 입고 큰 칼을 들고 나오면 바로 이 장군신을 모시는 대목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무신도 속 최영장군의 모습과 '최일 장군'이라는 이름

「최영 장군신」 항목에 따르면 무당이 신당에 모시는 최영장군 무신도는 손에 삼지창이나 월도를 든 모습, 말을 탄 모습, 또는 부부신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위력 있는 장군의 모습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위 그림처럼 큰 칼을 치켜들고 말을 달리는 장군이 그 전형입니다.

이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무속에서는 최영 장군신을 '최일 장군'이라고도 부르는데, 위 무신도 오른쪽 위에도 한글로 '최일장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 말엽 그림으로 추정되는 『무당내력도』의 '감응청배' 설명에는 '요즈음에는 풍덕군 덕물산을 향하여 최장군청배라고 부르짖는다'는 대목이 있어, 조선 말에는 이미 최영장군을 모시는 일이 상당히 일반화되었다고 백과사전은 봅니다.

최영장군을 둘러싼 설화도 신당 주변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최영 장군 설화」 항목에는 강화도에서 최영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녀가 구연한 이야기와, 영월 지역의 서낭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런 설화가 대체로 최영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 주변에서 신성성을 지키며 전승되고 있다고 정리합니다.

최영장군을 모신 점집을 찾을 때 알아 두면 좋은 점

점집이나 신당에서 최영장군 무신도를 봤다면 그 무당이 서울·경기·황해도 쪽 굿 전통에서 장군신을 중요하게 모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다만 장군신을 모신다는 사실만으로 신점이 잘 맞는다거나 특정 굿을 꼭 해야 한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백과사전도 최영 장군신의 성격을 원혼 신앙과 장군의 위엄에 대한 믿음으로 설명할 뿐입니다.

상담을 받을 때는 신당에 어떤 신을 모셨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는 실례가 아닙니다. 굿을 권유받는다면 어떤 굿거리로 진행되는지, 비용과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를 미리 글이나 문자로 확인해 두면 나중에 오해가 줄어듭니다. 점사 비용이나 굿 비용은 무당마다 다르고 공식 기준이 없으므로, 여러 곳의 안내를 비교해 보고 결정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덕물산 장군당은 지금 갈 수 없는 북한 땅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이어진 장군신 전통은 서울·경기 무당의 신당과 굿판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최영장군 신당을 이해하면 무당이 왜 역사 속 인물을 신으로 모시는지, 점집 신당 벽의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훨씬 잘 보이게 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물산 최영 장군 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336 , 「최영 장군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481 , 「상산거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120 , 「개성 덕물산 도당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2788 , 「최영 장군 설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480 , 그림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neral_Choe_Yeon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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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덕물산 최영 장군 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영 장군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산거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성 덕물산 도당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영 장군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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