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닙바나(nibbān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로, 타오르던 번뇌의 불이 꺼져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 곧 완성된 깨달음의 세계를 뜻하는 불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열반을 "번뇌가 소멸된 상태 또는 완성된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하는 불교 교리"로 정의하고, 말뜻으로는 '안온함', '불이 꺼진 상태'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고, 한국 불교는 그날인 음력 2월 15일을 열반재일로 기념합니다. 오늘날 "큰스님이 열반하셨다"처럼 스님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도 쓰이지만, 본래 뜻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 평안입니다.
뉴스에서 "○○스님 입적", "원적에 드셨다"는 말을 들으면 열반과 무엇이 다른지 헷갈리기 쉽습니다. 또 "열반에 든다"는 말 때문에 열반을 그저 '죽는다'의 높임말로만 아는 분도 많습니다.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열반', '대반열반경', '입적', '팔상' 항목과 조선왕조실록사전의 '사라쌍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성과포털의 열반재일 설명, 불교신문의 관련 기사들을 바탕으로 열반의 뜻과 종류,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 열반재일, 입적·원적 같은 표현의 차이를 차례로 정리한 것입니다.
열반 뜻 — '불어서 꺼진 상태'라는 니르바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열반은 니르바나의 음사어이고, 같은 말을 니원(泥洹), 열반나(涅槃那) 등으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뜻으로 옮긴 말에는 적멸(寂滅), 멸도(滅度), 택멸(擇滅)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완전한'이라는 뜻의 '파리(pari)'를 붙인 말이 반열반(般涅槃)이며, 이를 한문으로 원적(圓寂)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어원적으로 니르바나에는 '동요를 가라앉히다', '고요히 안정시키다'라는 뜻도 있지만, 흔히 '불을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고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불교신문의 용어 해설도 같은 비유를 듭니다. 바람이 불어와 타고 있는 불을 꺼 버리듯,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모든 번뇌와 고뇌가 소멸된 상태가 열반이며, 그때 비로소 고요한 최상의 안락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은 불교 수행의 최고 목표이자 궁극적인 도달점으로 여겨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열반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불교만의 용어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백과사전은 열반이 자이나교, 바라문교 등 여러 종교의 수행자들이 쓰던 특수한 용어였고, 베다 종교가 목표로 삼았던 이상적인 경지이기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다만 초기 불교에서는 불교 외에는 열반에 이르는 길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초기 경전이 말하는 열반 — 집착을 끊으면 찾아오는 평안
그렇다면 열반은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붓다가 "망집을 끊는 것으로 평안, 곧 열반이 생긴다"고 대답했다고 소개합니다. 『상윳타니카야』에도 세상의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열반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 있으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식별한 모든 좋은 것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제거하는 것이 불멸의 열반의 경지라고 말합니다.
이 평안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어서, 쾌락을 탐내지 않는 것, 아름다운 모습에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 등이 모두 그 길로 제시됩니다. 백과사전은 이런 점을 들어 "초기 불교의 열반은 신비적인 경지가 아니라 생활의 진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정리합니다. 다시 말해 열반은 죽은 뒤에만 가는 먼 세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집착과 탐욕을 내려놓을 때 드러나는 마음의 상태로 먼저 이해되었다는 뜻입니다.
불교신문의 해설도 몸이 있는 채로, 즉 살아서 깨달음에 이른 것과 몸이 소멸하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경우를 모두 열반이라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지금은 육신이 멸하는 때를 가리켜 열반이라고 부르는 일이 가장 많다고 덧붙입니다.
열반의 종류 — 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에서 무주처열반까지
시간이 흐르며 열반을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도 발전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부파불교에서는 열반을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으로 나눴습니다. 앞의 것은 생존의 근원, 곧 육신을 남긴 채 이룬 열반이고, 뒤의 것은 생존의 근원까지 남기지 않은 열반입니다. 깨달은 이가 살아 있는 동안의 열반과 육신마저 다한 뒤의 열반을 구분한 셈입니다.
대승불교에 들어오면 분류가 더 늘어납니다. 세친이 짓고 진제삼장이 번역한 『섭대승론석』은 열반을 본래청정열반,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 무주처열반의 네 가지로 나눕니다. 이 가운데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 성문·연각의 이승과 보살을 가르는 기준인데, 이승은 번뇌를 없앤 뒤 생사를 등지고 열반으로 나아가지만, 보살은 생사도 등지지 않고 열반도 등지지 않는다고 설명됩니다. 중생을 구하기 위해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대승의 보살 정신이 담긴 개념입니다. 본래청정열반은 존재의 근본 성품이 본래 맑고 깨끗하다는 진여의 이치를 가리킵니다.
우리나라의 고승들도 열반을 깊이 다뤘습니다. 원효는 『열반종요』에서 열반이 공(空)인가 공이 아닌가 하는 논쟁을 소개한 뒤, 말에 집착해 경전을 이해하면 두 견해 모두 허물이 되고 집착하지 않으면 어느 쪽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의상은 『법계도』에서 "생사와 열반은 항상 함께 화합되어 있다(生死涅槃常共和)"고 하여, 열반을 생사와 따로 떨어진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백과사전은 전합니다.
부처님의 열반 —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 마지막 모습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의 마지막 장면이 쌍림열반상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상' 항목은 이를 "80세에 부처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밑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한 일"이라고 설명하며, 그때가 2월 15일이었다고 적습니다. 입멸 연도는 서기전 383년경으로 전해지지만 이설이 많고, 탄생일·출가일·열반일도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불교권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조선왕조실록사전의 '사라쌍수' 항목에 따르면 '사라'는 '견고하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말이라 사라수는 '견고한 나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라 서남쪽 사라수 숲에서 설법을 마친 뒤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서쪽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누운 채 입멸했고, 사방에 한 쌍씩 서 있던 네 쌍의 사라수 가운데 각 쌍의 한 그루가 말라 죽었다고 하여 이를 사고사영(四枯四榮)이라 부릅니다. 나무들이 하얗게 변해 부처님의 몸을 덮었다 하여 그 숲을 학림(鶴林)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불교신문은 부처님이 슬퍼하는 아난존자를 위로하고 비구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한 뒤 '기름이 다한 불이 꺼지듯' 열반에 들었다고 전합니다. 이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 "자신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할 곳으로 삼아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라.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 없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입니다. 절에서 볼 수 있는 열반상이 늘 두 발을 내놓은 채 옆으로 누운 모습인 것도, 평생 길 위에서 가르침을 펼친 부처님의 삶을 상징한다고 불교신문은 설명합니다.
이 마지막 여정을 담은 경전이 『대반열반경』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경전은 "위대하고 완전한 열반을 설한 경전"이라는 뜻으로, 부파불교의 열반경과 대승 열반경으로 나뉩니다. 대승 열반경은 여래의 몸이 법신으로서 늘 머문다는 불신상주(佛身常住)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사상을 담아 동아시아와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열반재일 — 음력 2월 15일, 불교 4대 명절의 하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 열반재일(涅槃齋日)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성과포털의 설명에 따르면 열반재일은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념해 음력 2월 15일에 여는 불교 행사로, 석존의 열반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성점기』에 기록된 서기전 486년설과 『대반열반경』에 기록된 2월 15일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같은 자료는 『대당서역기』를 인용해 인도의 절 안에 누워 있는 부처님의 열반상이 있었고 그 길이가 1,000여 자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불교신문은 부처님의 탄신·출가·성도·열반의 날을 불교 4대 명절로 삼는다고 설명합니다.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 2월 8일 출가재일, 12월 8일 성도재일과 함께 2월 15일 열반재일이 4대 명절을 이루며, 특히 음력 2월은 출가절(8일)과 열반절(15일)이 함께 있어 각별한 달로 여겨집니다.
열반·입적·원적은 어떻게 다를까 — 스님의 죽음을 부르는 말
불교에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입적' 항목에 따르면 입적(入寂)은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키거나 승려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 입멸(入滅)이라고도 합니다. 원래는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붓다와 아라한의 죽음을 가리켰지만 고승의 죽음을 높이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고, 『삼국유사』 원광서학조에 "원광이 84세로 입적했다"는 표현이 실려 있을 만큼 그 연원이 오래되었습니다.
원적(圓寂)은 불교신문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덕이 원만하고 모든 악이 적멸한다는 뜻으로, 본래는 무지와 사견을 버리고 깨달았다는 의미였으나 뒤에 스님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이 밖에도 적멸(寂滅), 멸도(滅度), 귀진(歸眞, 본래의 참된 자리로 돌아감), 인연 따라 적멸의 모습을 보인다는 시적(示寂) 같은 말이 쓰입니다.
정리하면 열반은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키는 가장 근본적인 말이고, 입적·원적은 그 경지에 들었다는 뜻을 빌려 스님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불교신문은 불교의 죽음 관련 단어들이 대부분 '깨달음을 완성했다'는 뜻을 담고 있어, 죽음 자체를 슬퍼하기보다 깨달음의 완성으로서 죽음을 돌아본다고 설명합니다.
열반은 멀고 신비로운 세계처럼 들리지만, 초기 경전이 말하듯 집착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평안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모든 것은 변한다.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말씀이 열반의 뜻을 가장 짧게 요약한 가르침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열반'(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7047), '대반열반경'(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374), '입적'(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298), '팔상'(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416) / 조선왕조실록사전 '사라쌍수'(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사라쌍수(沙羅雙樹))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성과포털 '열반재일'(http://waks.aks.ac.kr/subject.aspx?dataID=31657) / 불교신문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출가절과 열반절'(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911), '열반(涅槃)'(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55127), '원적(圓寂)'(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49), ''죽음'에 대한 표현'(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390), '열반재일'(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8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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