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일화」 게시판에 올린 [굿판에서 시작된 사랑, 4대째 화랭이 집안 — 동해안별신굿 김석출](https://sinimalhaetda.com/board/anecdote/133)에서는 김석출(1922~2005) 집안이 어떻게 무업을 잇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의 첫머리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뒤편을 더 자세히 따라가 봅니다. 한 사람의 악사가 어떤 스승을 만나 어떤 음악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가 떠난 뒤 동해안별신굿을 누가 이어받았는지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포털, 그리고 문화재청 발표를 다룬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동해안별신굿이라는 굿 자체의 순서가 궁금하신 분은 [동해안별신굿 — 바닷가 굿청에서 골매기신께 풍어와 마을 안녕을 비는 축제](https://sinimalhaetda.com/board/all-about/747)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 포항 환호동에서 부산까지, 대백과가 기록한 생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석출」 항목에 따르면 그는 1922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환호동에서 태어났고, 김경남(金京南)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합니다. 집안 대대로 무업을 이어 온 세습무가 출신으로, 아버지 김성수와 어머니 이선옥도 무업에 종사했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형 김호출의 집에서 지내며 일곱 살에 굿판에 들어섰고, 열두 살부터 굿판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005년 중앙일보 부고 기사는 그가 여덟 살 때 동해안 별신굿에 입문했다고 적고 있어, 자료에 따라 한 살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포항 등 경북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고, 서른이 넘어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대백과는 그를 장구뿐 아니라 호적(胡笛), 곧 태평소에도 능했던 동해안 굿의 대표적인 악사로 소개합니다.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의 예능보유자(악사)로 인정받았고, 2005년 명예보유자가 된 뒤 같은 해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스승 방태진과 '호적 시나위', 굿판 밖으로 넓힌 음악
김석출의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갈림길은 해방 무렵의 부산이었습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그는 이 무렵 호적의 명인 방태진(1901~?)에게서 호적을 배웠고, 이후 직접 '호적 시나위'를 짜기도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1950년대에는 유랑극단에 참여했고, 판소리 명창 박동진, 대금 명인 이생강 등과도 음악적으로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혔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부고 기사에는 동료 연구자의 증언이 실려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전문위원이던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 대표는 그가 태평소, 장구, 꽹과리 등 모든 악기에 탁월했고, 특히 태평소를 좋아해 직접 만들어 연주하며 '김석출류 태평소 산조'를 창안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또 장단이 복잡하기로 이름난 동해안 별신굿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고 덧붙였지요.
그 복잡한 장단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2004년 부산일보 기획 기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기사는 그를 35박의 동해안 굿거리 장단에 맞춰 연주하는 태평소 산조 명인으로 소개하고, 그가 어린 시절 할머니의 구음으로 익힌 잉어걸이(엇박), 독꺾이(돌출) 장단, 국덕장단 등이 김씨 집안 굿판에서만 들을 수 있던 희귀한 가락이었다고 전합니다. 이 가락을 남사당의 후예인 김용배, 김덕수 등이 일찍이 그에게서 익혀 사물놀이 장단에 얹었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입니다.
■ 일본과 영국 무대, 그리고 음반으로 남은 소리
김석출의 소리는 바닷가 굿청을 넘어 해외 무대에도 올랐습니다. 대백과의 활동 기록을 보면 1982년 일본 도쿄 국립극장 초청 공연, 1994년 일본 교토·오사카 공연, 1995년 일본 요코하마 페스티벌 참가, 1996년 호암아트홀의 「유라시안 에코즈」 공연, 1997년 영국 로열홀 공연이 이어집니다.
음반도 여럿 남겼습니다. 중앙일보 부고 기사에 따르면 1993년부터 「신명」, 「유라시안 에코즈」, 「동해 무속 사물」, 「동해안 별신굿」, 「동해 오구굿」 등을 발표했습니다. 굿판에 직접 가 볼 수 없는 오늘날, 이 기록들은 그가 남긴 가락을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음반의 현재 구입 가능 여부나 정확한 발매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으니, 찾으실 때는 국악 음반 전문 판매처나 도서관 소장 목록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무녀 김유선과 함께한 굿판, 바라지로 받친 굿
동해안별신굿은 무녀가 노래하고 춤추며 굿을 하고, 남자 악사들이 장단으로 이를 받쳐 주는 굿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해안별신굿」 항목은 1985년 이 굿이 중요무형문화재 풍어제의 하나로 지정될 때 기예능보유자로 악사 김석출과 무녀 김유선 부부가 인정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같은 항목의 사진 설명에는 바닷가에서 용왕신을 모셔 오는 용왕맞이 장면의 무녀가 기능보유자 김유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중앙일보 기사도 그가 이끌던 굿판에서 창과 춤은 부인 김유선과 세 딸이 맡고, 조카 김용택 등이 악사로 활동했다고 전합니다.
부산일보 기사에는 이 일가가 실제로 굿판을 꾸린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1996년 2월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 해변에서 열린 두모포 풍어제는 마을이 8년째 되는 해에 연 굿으로, 일주일 일정으로 동해안별신굿 식구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만신 김영희가 신대를 들고 좌정하자 악사들이 쇠와 징, 장구로 굿머리를 열었다고 하지요. 기사는 무녀들은 굿을 하고 남자 화랭이(양중)들은 무악으로 바라지를 하는데, 이들이 부부와 가족으로 이어진 친족 집단이라고 설명합니다. "무당이나 화랭이가 되려면 김가네로 시집가고"로 시작하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랐다는 대목에서는 이 집안이 동해안 굿판에서 차지했던 무게가 느껴집니다.
■ 그 뒤를 이은 사람들 — 김영희와 김용택
김석출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동해안별신굿은 새 보유자를 맞았습니다. 2006년 6월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김영희와 김용택을 동해안별신굿 보유자로 인정했습니다. 기사는 김영희를 경북 지역 굿과 부산 중심의 경남 별신굿을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무녀로 40여 년간 굿판을 벌여 왔다고 소개했고, 김용택에 대해서는 '9살 때부터 굿판에서 활동한' 동해안별신굿 최고의 악사라는 평가를 전했습니다. 대백과는 김영희가 김석출의 장녀이며, 둘째와 셋째 딸도 전수조교로 활동했다고 기록합니다.
이후의 소식도 이어집니다. 2015년 3월 18일 YTN 보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2006년 6월 보유자로 인정된 김영희를, 종목의 전승과 보급에 헌신해 왔지만 건강상 이유로 활발한 전승 활동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그간의 공로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명예보유자로 인정했습니다. 김용택은 2018년 4월 29일 향년 71세로 별세했습니다. 매일경제 부고 기사는 그가 7세부터 아버지 김호출과 삼촌 김석출에게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배워 4대째 동해안 굿판을 지킨 악사였다고 전합니다. 김용택이 굿판에 나선 나이는 이처럼 자료마다 조금 달라서, 경향신문(2006)은 9살, 매일경제(2018)는 7세로 적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어린 나이부터 집안 어른들 곁에서 장단을 익혔다는 점은 같습니다.
오늘날 국가유산포털에서 동해안별신굿은 1985년 2월 1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관리단체 (사)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보존회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한 집안의 장단과 소리가 보존회라는 이름 아래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보유자와 전승교육사 명단은 수시로 바뀔 수 있으니, 최신 정보는 국가유산포털의 '전승자 정보'에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다음에 동해안 바닷가에서 풍어제 소식을 들으신다면, 장구와 태평소 가락 속에 4대에 걸쳐 이어져 온 한 집안의 손길이 담겨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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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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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두 직접 열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석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259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해안별신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6882
- 국가유산포털 「동해안별신굿」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Asno=00820100&ccbaCpno=1272100820100&ccbaCtcd=21&ccbaKdcd=17&pageNo=1_1_1_0
- 중앙일보 「[삶과 추억] 평생 풍어굿판 누빈 민속음악 달인」(20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45103
- 부산일보 「[화가 주경업이 만난 문화지킴이] <26> 4대째 이어오는 세습무 화랭이 김석출옹」(2004.12.28)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41228000131
- 경향신문 「중요무형문화재 3명 선정」(2006.06.20) https://www.khan.co.kr/article/200606201842411
- YTN 「김영희 동해안별신굿 명예보유자 인정」(2015.03.18) https://www.ytn.co.kr/_ln/0106_201503181103000938
- 매일경제 「김용택 동해안별신굿 보유자 별세」(2018.04.30) https://www.mk.co.kr/news/society/8294051
- 참고(원글): https://sinimalhaetda.com/board/anecdote/133 / 관련 글: https://sinimalhaetda.com/board/all-about/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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