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당 무신도는 서울 인왕산 국사당에 모셔진 무속 신령 그림으로, 무신도 21점과 명두 7점을 합한 28점이 1970년 3월 국가민속문화유산(당시 중요민속자료)으로 지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12점은 조선 말기에 한 작가가 비단에 채색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영장군·산신·칠성님·삼불제석·호구아씨·창부씨 등 서울 굿에서 모시는 신령이 한 분씩 그려져 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당의 무신도」).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당의 무신도」·「무신도」·「인왕산 국사당」·「목멱신사」 항목,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의 지정 정보에서 확인한 내용만 옮겼습니다. 특정 무당이나 점집을 홍보하는 글이 아니며, 굿 비용이나 효험처럼 공식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은 넣지 않았습니다.
무당 신당이나 점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벽에 걸린 울긋불긋한 신령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무신도라고 부르는데,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굿이 끝나면 굿당의 것을 불태우는 관습 때문에 연대가 오랜 무속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가운데 서울 한복판 인왕산 기슭의 국사당에는 조선 말기 그림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나라가 지정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국사당이 어떤 곳인지, 무신도 28점에 누가 그려져 있는지, 벽에 걸린 순서대로 신령 하나하나의 내력, 그리고 오늘 무당 신당의 무신도를 볼 때 알아 두면 좋은 점을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사진: 국사당 무신도 가운데 「창부씨」, 작자 미상(조선 말기 추정),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원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피리를 불며 줄 위에 선 광대신을 그린 그림입니다.
국사당은 어떤 곳인가 — 남산 목멱신사에서 인왕산 선바위 아래로
국사당은 서울을 지키는 신당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왕산 국사당」 항목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에 태조 5년 12월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봉해 호국신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고, 국사당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타납니다.
처음 자리는 남산 꼭대기, 지금의 남산 팔각정 근처였습니다. 1925년 일본이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그보다 높은 곳에 조선의 신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옮기라고 강요했고, 당을 헐어 그 재료를 인왕산 기슭으로 가져가 원형에 가깝게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새 자리로 인왕산을 고른 까닭은 그곳이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라는 이야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백과사전은 국사당이라는 이름도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을 함께 소개합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을 보면 국사당은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인가에서 떨어진 산속에 세운 굿당에 속하고, 안쪽 세 면 벽에 무신도를 걸고 마루에 제상을 차려 굿을 하는 구조입니다. 건물은 1973년 7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그 안의 무신도 28점은 이보다 앞선 1970년에 먼저 지정됐습니다. 2004년에는 무신도 모사본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연혁에 남아 있습니다.
무신도 28점의 구성 — 누가 그려져 있나
백과사전에 따르면 국사당의 무신도는 무신도 21점과 명두 7점, 모두 28점이며 그린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중 12점은 조선 말기에 같은 사람이 비단 바탕에 채색한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후대에 그린 것이라 솜씨가 떨어진다고 평가합니다.
그려진 신령은 아태조 3점을 비롯해 아태조비 강씨부인, 호구아씨, 용왕대신, 산신님, 창부씨, 별상님, 무학대사, 곽곽선생, 단군, 삼불제석, 나옹님, 칠성님, 군웅대신, 민중전, 최영장군이 각 1점씩입니다. 왕과 장군, 고승과 중국 학자, 병을 주관하는 신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입니다.
현재는 정면 벽에 9매, 좌우 벽에 3매씩 모두 15매가 걸려 있습니다. 당 왼쪽 온돌방에도 4매가 더 있는데, 관리자들은 금성대감·구눙님·원당대감·호구아씨라고 부르지만 마루 그림보다 격이 많이 떨어진다고 백과사전은 적었습니다.
그림 위에는 둥근 놋쇠 거울 모양의 명두가 몇 개 걸려 있습니다. 명두는 악기도 점구도 아니지만, 스승 무녀와 제자 사이에 대를 잇는 가장 대표적인 증표이고 앞선 무녀의 넋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벽에 걸린 순서대로 보는 신령들 (1) — 창부씨부터 호구아씨까지
백과사전은 오른쪽부터 걸린 순서대로 그림을 설명합니다. 첫 그림 창부씨(가로 57㎝·세로 93㎝)는 광대씨라고도 부르며, 예능의 신으로 보이지만 굿에서는 흔히 액을 막아 주는 신으로 섬깁니다. 피리를 불며 줄을 타는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자세가 묘하게 그려졌다고 합니다.
두 번째 곽곽선생은 종이에 그려 재료와 필치가 다르고, 그림 위 글로 보아 일제강점기 작품입니다. 중국 동진의 학자 곽박이 점복업자들 사이에서 조상신처럼 모셔지며 이름이 와전된 것으로 보이며, 1972년 당시 관리인은 눈병 앓는 사람들이 주로 믿었고 점괘에도 신통했다고 전했습니다.
세 번째 별상님은 칼을 짚고 앉은 장수 모습입니다. 무당들도 신격을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제주 무가 속 대별상이 천연두신으로 나오는 점에서 별상을 천연두신으로 보는 해석이 실려 있습니다.
네 번째 산신은 호랑이를 탄 노인 뒤로 복숭아를 든 동자가 서 있고, 다섯 번째 군웅대신은 액을 막는 신으로 믿어집니다. 여섯 번째 최영장군은 최일장군이라고도 부르며 경기도 일대에서 특히 중요한 신이고, 국사당에서도 무당과 치성 드리는 사람들이 가장 중시한다고 합니다.
일곱 번째 호구아씨는 홍역신으로, 1929년 원본이 타서 다시 그린 것이라고 관리인이 전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가 소녀 신상 앞에 연지와 분이 놓여 지저분하다고 적은 것이 바로 이 그림의 전신이며, 지금도 그 앞에는 작은 경대와 예단이 놓여 있다고 합니다.
벽에 걸린 순서대로 보는 신령들 (2) — 아태조에서 민중전까지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는 '아태조 내외분'입니다. 왕비는 후궁이었다는 점에서 신덕왕후 강씨로 보지만,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고려 공민왕상이 걸렸다고 되어 있어 공민왕비 노국공주일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아태조 그림 아래에는 전주 경기전 태조 영정의 사진판으로 보이는 작은 영정도 걸려 있습니다.
열 번째 무학대사와 열두 번째 나옹님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이름이 나오는 그림입니다. 무학은 조선 건국을 도운 승려이고, 나옹은 공민왕의 왕사였던 고려 고승입니다. 불교의 큰스님이 무당 신당의 신령으로 모셔진 것입니다.
열한 번째 삼불제석은 당금애기가 낳은 세 아들이 제석신이 되었다는 「제석본풀이」와 이어지고, 이 거리에서 무당은 고깔에 장삼 차림으로 굿을 합니다. 열세 번째 칠성님은 구름 위의 도사 일곱 분으로 그려졌으며, 도교에서 들어와 수명을 맡는 신으로 뿌리내렸습니다.
열네 번째 용왕대신은 파도 위에서 용을 탄 남신이고, 열다섯 번째 민중전은 규격과 화법이 달라 더 후대 그림으로 봅니다. 원삼에 족두리를 쓴 주신과 두 동녀를 배치한 모습이 호구아씨 그림과 닮아 호구아씨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정면 왼쪽 구석의 작은 액자에는 '단군천신'이라고 적힌 단군상도 있습니다.
무신도란 무엇인가 — 기록·재료·그린 사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신도」 항목은 무신도를 무속에서 섬기는 신들을 그린 종교화로 정의합니다. 무화·무속화라고도 하고, 무당들 사이에서는 화분이나 족자라는 말을 씁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이규보의 「노무편」입니다. '벽에는 울긋불긋 신상을 그려 놓고, 칠원과 구요는 액자에 그려 붙였다'는 구절이 원색 무신도의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현재 보고된 무신도는 신의 계통으로 20여 종, 모두 113종이며 천신·산신·장군신·대감신·불교신·용신·무조신 등으로 나뉩니다.
재료는 고운 무명이나 당목이 주로 쓰이고 이따금 한지도 씁니다. 크기는 가로 60㎝ 안팎, 세로 110㎝ 정도가 보통이며, 붉은색·노란색·푸른색을 기본으로 흰색·검은색·초록색을 더합니다. 그린 사람은 절에서 탱화를 그리는 금어로 추정되는데, 무당과 금어의 증언으로 확인된다고 합니다.
무신도는 주로 중부와 북부 지방에 있습니다. 강신무는 몸주신을 신단에 모시기 때문에 그 신을 상징하는 그림이 필요하지만, 남부의 세습무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입니다. 백과사전은 무복과 무신도가 가장 다양한 곳으로 황해도 무속을 꼽습니다.
무당 신당에서 무신도를 볼 때 알아 둘 것
무신도는 그 무당이 어떤 신을 모시는지 보여 주는 단서입니다. 강신무가 신병과 내림굿을 거쳐 받은 몸주신을 신단에 모시고, 그 신을 그림으로 걸기 때문입니다. 신당 구성과 명두·신단의 뜻은 무당 신당 뜻 정리 글에, 몸주신과 무구의 관계는 몸주신 뜻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다만 그림만으로 신점이나 굿의 실력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백과사전은 후대에 무신도가 조잡해지고, 요즘은 모조지에 오프셋 인쇄한 그림을 불구상에서 팔기도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림이 낡았는지 새것인지보다 상담 방식과 비용 설명이 분명한지를 먼저 살피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국사당처럼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당은 굿이 열리는 신앙 공간이기도 합니다. 찾아갈 때는 굿이나 치성 중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무신도 촬영도 관리하는 분께 먼저 묻는 것이 예의입니다. 점집이나 굿당 어디든 신령 그림은 누군가에게 기도의 대상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당의 무신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351 , 「무신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111 , 「인왕산 국사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978 , 「목멱신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627 , 우리역사넷 「무신도의 주악 도상과 악기」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25_0060_0060_0040 , 국가유산포털 「국사당의 무신도」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Asno=00170000&ccbaCpno=1481100170000&ccbaCtcd=11&ccbaKdcd=18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인왕산 국사당」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481100280000&ctptUid=13898859685433301677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ncykorea-%EA%B5%AD%EC%82%AC%EB%8B%B9_%EB%AC%B4%EC%8B%A0%EB%8F%84_%EC%A4%91_%EC%B0%BD%EB%B6%80%EC%94%A8.jpg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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