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3년(1277), 나주에는 금성산 산신이 무당에게 내려 "진도와 탐라를 칠 때 내가 큰 힘을 보탰는데 장수와 군사만 상을 받고 나는 받지 못했다. 나를 정녕공(定寧公)으로 봉하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투는 삼별초 진압입니다.
『고려사』 정가신 열전에 따르면 나주 출신 관리 정가신이 이 말을 왕에게 넌지시 전해 실제로 금성산신을 정녕공에 봉하게 하고, 해마다 녹미 다섯 섬을 사당에 보내게 했다고 합니다. 『고려사』는 이를 두고 정가신이 "현혹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해설은 인근 무등산신이 이미 같은 공으로 작위를 받은 상황에서, 지역의 자존심이 무당의 공수를 통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고려 사람들에게 무당은 신과 마을을 잇는 목소리였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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