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인종 9년(1131) 8월, 천문과 길흉을 맡던 관리 일관(日官)이 "무당의 풍속이 성해 음사가 날로 늘어난다"며 무당들을 멀리 내쫓자고 건의했고, 인종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개경의 무당들은 재물을 모아 은병(銀甁) 100여 개를 마련해 권세 있는 귀족들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귀족들은 "귀신은 형체가 없어 참과 거짓을 알 수 없으니 무당을 모두 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아뢰었고, 왕은 금지 조치를 누그러뜨렸다고 합니다.
무당을 직접 옹호하는 대신 '알 수 없다'는 논리로 막아 낸 점이 흥미롭습니다. 연구자들은 이자겸의 난과 가뭄 같은 혼란 속에서 왕실과 귀족, 백성 모두가 무속에 기대고 있던 당시 분위기를 함께 읽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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