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모든것

조왕신 — 부뚜막 정화수 한 사발에 담긴 부엌의 신, 조왕할머니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옛 시골집 부엌에 들어서면 부뚜막 한쪽에 맑은 물 한 사발이 놓여 있던 풍경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할머니가 새벽마다 그 물을 갈며 조용히 허리를 숙이시던 모습도요. 그 물사발은 그냥 물그릇이 아니라 부엌을 지켜 준다고 믿어 온 신, ‘조왕(竈王)’을 모신 자리였습니다. 지난번 집의 으뜸 신 성주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디지털청주문화대전·디지털금산문화대전의 설명을 따라 부엌의 신 조왕신을 차분히 만나 보겠습니다.

■ 조왕신은 어떤 신일까요

우리역사넷은 조왕을 한자 그대로 ‘부엌을 지키는 왕’이라고 풀이합니다. 부엌은 음식을 만들고 불을 지피는 곳이기에 조왕은 불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는 설명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왕신앙」 항목 역시 조왕신을 집안에서 부엌을 관할하는 신으로 소개하며, 그 기원은 불을 다루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습니다.

부르는 이름도 정겹습니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에 따르면 조왕신, 조왕할매, 조왕대감, 부뚜막신, 부엌신이라고 하고, ‘불의 신’이라는 뜻으로 화신(火神)이라고도 부릅니다. 부엌이 주로 여성의 공간이었던 만큼 신격도 여성성을 지녀서 ‘조왕할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우리역사넷도 우리나라에서는 조왕을 ‘조왕할머니’라고 부른다고 전하고, 백과사전은 ‘조왕각씨’, ‘조왕할망’이라는 이름을 소개하면서도 신격 자체는 분명하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입니다.

■ 불씨와 정화수, 부엌의 두 얼굴

부엌은 불과 물을 함께 쓰는 곳입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은 조왕신이 원칙적으로 불을 모시는 신앙이지만, 때로는 물로 상징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사할 때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가져가거나 새집에 성냥을 들고 가는 풍습은 모두 불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강원도 화전민촌에서는 부뚜막에 불씨를 보호하는 자리를 따로 만들어 ‘화투’ 또는 ‘화티’라 부르며 불이 꺼지지 않게 지켰다고 하니, 불씨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부뚜막에 물을 담은 종지를 놓아 조왕신을 모셨는데, 이를 ‘조왕보시기’ 또는 ‘조왕중발’이라고 불렀습니다. 백과사전은 조왕에게 물을 올리는 것이 불을 끄려는 뜻이 아니라 물과 불을 함께 다루는 공간이라서 생긴 것으로 본다고 풀이합니다. 부엌에 정화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 초상집에 다녀오는 길에 먼저 부엌에 들르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 조왕단지와 조왕사발, 새벽의 첫 물

디지털청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청주 지역에서 조왕은 주부가 모시는 가장 중요한 가신이었습니다. 솥 뒤나 부뚜막 한구석에 작은 단지에 쌀을 담은 ‘조왕단지’나, 사발에 정화수를 담은 ‘조왕사발’을 두고 이것을 조왕의 신체로 여겼습니다. 드물게는 부엌 벽에 한지를 접어 걸어 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모시는 방법은 소박했습니다. 주부가 아침밥을 지으러 부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조왕사발의 물을 새로 갈고, 허리 숙여 간단히 절하며 마음속으로 집안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가 군대에 갔거나 오래 객지에 나가 있으면 더욱 정성을 들여, 초하루나 보름 새벽에 아직 아무도 떠 가지 않은 첫 우물물을 길어다 갈아 드렸다고 합니다. 금산 지역에서도 부엌 한쪽에 납작한 돌을 놓고 그 위에 물사발을 올렸으며, 햅쌀이 나면 먼저 밥을 지어 조왕께 올린다는 제보자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앉아서 삼천리 서서 구만리” 객지 자식을 위한 기도

조왕신앙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대목은 집 떠난 가족을 향한 기도입니다. 백과사전은 우리 조왕신앙에 주부가 부지런히 일함으로써 가족이 잘 되고, 특히 객지에 있는 가족을 지켜 준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도 조왕신이 자손의 명과 복에 관여하는 신으로 알려져, 주부가 매일 아침 “객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평안하고 끼니를 굶지 않게 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금산 장동이 마을에서 채록된 축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앉아서 삼천리 서서 구만리/ 굽어살피시는 조왕님네!” 그리고 자손들이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탈이 없고, 길에서는 길대장군이, 산에서는 산신이, 들에서는 무장신장이 도와주시기를 차례로 빕니다. 화려한 말은 없지만, 부엌 한구석에서 자식 걱정을 내려놓던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도입니다.

■ 하늘에 오르는 부엌신, 이웃 나라와 제주의 이야기

우리역사넷은 중국에서 조왕을 조신(竈神), 조군(竈君), 사명조군(司命竈君)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한 해 동안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하는 신으로 여겼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늘로 올라가는 12월 23일 무렵 엿이나 떡을 올려 입을 붙게 하거나, 아궁이 주변에 술을 발라 취하게 하는 풍속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조왕의 입으로 여기는 아궁이에 엿이나 술을 바르는 풍속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 솥에 밥을 가득 담아 주걱을 꽂거나 솥뚜껑을 뒤집어 그 위에 제물을 차렸다고 소개합니다.

그렇다고 조왕신앙을 모두 바깥에서 들어온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 조에 “모두 문 서쪽에 조신(竈神)을 둔다”는 기록이 있어 고대부터 고유의 조왕신앙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역사넷도 이능화가 『조선무속고』에서 우리 조왕신이 중국식 수입이 아니라 오래된 습속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하는데, 백과사전은 영향 관계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균형 있게 정리합니다. 제주 무속신화 「문전본풀이」에서는 대문신 남선비의 본처가 조왕신이고 첩이 변소신이라, 둘이 사이가 나빠 서로 오가면 탈이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백과사전은 이를 깨끗한 부엌과 부정한 변소의 대립을 신화로 설명한 것으로 풀이합니다.

■ 굿판의 조왕상과 오늘의 부엌

조왕은 굿에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에 따르면 해마다 시월상달에 무당을 불러 안택굿을 할 때는 부엌에 조왕상을 차리고 조왕굿을 했고, 경을 읽는 경객을 부를 때는 『조왕경』이나 『환희조왕경』을 읽으며 고사를 지냈습니다. 백과사전은 남부와 충청 지방에서 조왕신앙이 특히 발달해 굿이나 독경에서 부엌이 중요한 제장이 되었고, 중부 이북에서는 성주나 대감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지역 차이를 설명합니다.

1970년대 이후 입식 부엌과 싱크대, 가스레인지가 자리 잡으면서 집에서 조왕을 모시는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이사할 때 밥솥을 들고 가장 먼저 새집 부엌으로 들어가는 풍습이 조왕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 마음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우리역사넷과 백과사전 사진 자료가 보여 주듯, 동학사·용문사·봉원사 같은 절이나 공주 갑사의 사찰 주방에 걸린 조왕탱화에서는 지금도 조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밥을 지으며 가족의 끼니와 안부를 한 번 떠올려 보는 것, 그것이 조왕할머니가 지켜 온 부엌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왕신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2416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정연학) 조왕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33_0060_0020_0010_0020 , 디지털청주문화대전 「조왕신앙」 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1110 , 디지털금산문화대전 「조왕」 https://geumsan.grandculture.net/geumsan/toc/GC0920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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