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모든것

서낭당 — 고갯마루 돌무더기와 오색 천, 마을을 지켜 온 서낭신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1

시골 고갯마루를 넘다 보면 오래된 나무 아래 돌무더기가 소복이 쌓여 있고, 가지마다 오색 천이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서낭당, 또는 성황당이라 불렀어요. 오늘은 마을 어귀를 지켜 온 서낭당과 서낭신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드릴게요.

■ 서낭당은 어떤 곳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서낭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으로, 성황당이라고도 합니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가 많고, 그 곁에는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나 장승이 서 있기도 하지요.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 오색 천 등 무엇이든 놓고 지나다녔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를 지켰다고 합니다. 지나갈 때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한 뒤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도 전해 옵니다.

■ 다섯 가지 모습의 서낭당

서낭당의 모습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뉩니다. 서낭나무 아래 돌을 쌓은 누석단이 있고 나무에 백지나 오색 비단 헝겊을 매단 형태, 돌만 쌓은 누석단 형태, 서낭나무에 헝겊만 매단 형태,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그리고 큰 자연석을 세운 입석 형태예요. 가장 흔한 것은 첫 번째 형태이고, 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는 중부 내륙 산간과 영동 지역에, 높이 120~200cm쯤 되는 자연석을 세워 '돌서낭'·'선돌'이라 부르는 형태는 중부·남부 지역에서 간간이 보인다고 합니다.

■ 서낭신앙은 어디서 왔을까

서낭신앙의 기원을 두고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손진태·조지훈 등이 주장한 것처럼 옛 경계표였던 돌무더기가 점차 경계신의 처소이자 제단으로 여겨진 우리 고유의 신앙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성황(城隍) 신앙이 들어와 형성되었다는 설이에요. 문헌으로는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시초로 전해지며, 그 뒤 고려는 각 주·부·현마다 서낭을 두었습니다. 고려 고종이 몽골군을 물리친 것을 서낭신의 도움으로 여겨 신호(神號)를 더해 올린 일도 있었다고 하지요. 조선 시대에도 태조 이성계가 여러 산천의 서낭에 제사했고, 태종은 백악서낭과 송악서낭을 새 도읍의 서낭으로 모셨습니다.

■ 마을을 지키는 신, 서낭신

서낭은 선왕, 성황이라고도 불리는 마을의 수호신(동신, 洞神)입니다.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에는 남서낭과 여서낭으로 모시는 골매기서낭이 있어 마을을 처음 연 입향시조와 결합되기도 하고, 바닷가에서는 배를 지켜 주는 배서낭을 섬겼어요. 그래서 서낭은 마을 수호신이자 풍요의 신, 조상숭배 신앙이 함께 어우러진 신앙으로 이해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이나 봄, 가을 가운데 날을 골라 서낭당 앞에 제물을 차리고 서낭제(서낭굿)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고, 제관으로는 부부가 화목하고 이웃에게 존경받는 사람을 뽑아 며칠 전부터 몸가짐을 삼가게 했습니다.

■ 돌 하나에 담긴 마음

오늘날 서낭당은 많이 사라졌지만, 고갯길 돌무더기에 돌 하나를 얹던 마음은 결국 "오늘 길도 무사하기를, 우리 마을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도였을 거예요. 혹시 산길에서 오래된 서낭나무를 만나시거든, 그 돌무더기에 담긴 옛사람들의 바람을 잠시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낭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67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낭'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67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낭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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