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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 황해도 바닷가 마을이 풍어와 안녕을 빌던 굿, 그리고 만신 김금화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바다를 일터로 삼는 사람들에게 한 해의 시작은 늘 두근거리는 기도와 함께였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황해도 해주와 옹진, 연평도 일대의 바닷가 마을에서 이어져 온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입니다. 배연신굿은 배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굿이고, 대동굿은 마을 사람 모두의 안녕을 비는 굿이에요. 나라에서는 이 두 굿을 하나로 묶어 1985년 2월 1일 국가무형유산(당시 중요무형문화재)으로 지정했습니다.

■ 배 위에서 올리는 굿, 배연신굿

배연신굿은 선주가 비용을 대고 직접 배 안에서 벌이는 개인 뱃굿입니다. 주로 음력 정월에서 2월 사이에 하루 종일 이어지는데요, 바다에 배를 띄워 놓고 그 위에서 배의 안전과 풍어, 집안의 번창을 빕니다. 신청울림으로 시작해 당산맞이, 초부정·초감응거리, 소당제석거리, 먼산장군거리, 대감거리, 다릿발 용신굿을 거쳐 마지막 강변굿까지 차례로 진행돼요. 인천투어 소개에 따르면 연희적인 요소가 많고 아기자기하며 해학적인 것이 이 굿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엄숙한 기도 속에 웃음이 함께 섞여 있는 셈이지요.

■ 띠배에 실어 보내는 액운

배연신굿의 마지막 거리인 강변굿에서는 배 안의 굿을 마친 뒤 강변에서 잡귀들을 풀어 먹입니다. 그리고 띠로 엮은 작은 배, 곧 띠배를 만들어 제물과 허수아비를 싣고 바다로 띄워 보내요. 온갖 질병과 잡귀, 떠도는 영혼들을 함께 실어 보내 한 해의 재액을 막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파도 위로 멀어지는 띠배를 바라보며 마음속 걱정도 함께 떠나보냈을 바닷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 마을 전체가 굿판이 되는 대동굿

대동굿은 마을의 공동 제사로, 음력 정월이나 2월에 해마다 또는 몇 해 걸러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무당이 하는 굿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굿으로 꼽히지요. 황해도 해안 마을에서는 당신(堂神)으로 '서낭'과 '임경업 장군신'을 모셨다고 해요. 바닷가에 굿청을 차리고 마을 당에서 신을 맞아들이는 당산맞이로 시작한 뒤, 무당 일행이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축원해 주는 세경돌기를 합니다. 굿이 끝나고 물이 들어올 무렵이면 '뱃기내림'을 하는데, 신이 내린 뱃기를 선원들이 들고 앞다투어 자기 배로 달려가 모신다고 해요. 마을 사람 모두의 안녕을 빌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축제였던 셈입니다.

■ 피란민이 지켜 낸 굿, 그리고 만신 김금화

분단 이후 황해도 바닷가에서는 더 이상 이 굿을 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천과 강화도 등 해안에 자리 잡은 황해도 출신 주민들과 무당들이 이 굿을 이어 갔고, 그 덕분에 1985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어요. 이때 보유자로 인정된 분이 무녀 김금화, 악사 최음전, 배치기노래의 안승삼입니다.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금화 만신은 열두 살에 무병을 앓고 열일곱 살에 외할머니인 김천일 만신에게서 내림굿을 받았다고 해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문화사절단으로 미국 무대에 서는 등 우리 굿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고, 2019년 8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 한 척의 안전을 비는 작은 기도에서 마을 전체의 축제까지,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에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간절함과 공동체의 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올해도 모든 바닷길이 평안하기를 함께 빌어 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encykorea.aks.ac.kr/Article/E0028283), '서해안배연신굿'(E0028282), '서해안대동굿'(E0028281) / 인천투어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김금화)'(itour.incheon.go.kr) / 한겨레 '하늘로 떠난 큰무당…배연신굿 보유자 김금화 별세'(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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