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독립문역에서 인왕산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크고 작은 법당이 모여 있는 '절 마을'을 지나 가파른 계단 끝에 소박한 맞배지붕 건물 한 채가 나타납니다. 바로 인왕산 국사당입니다. 그 위로는 스님이 장삼을 걸치고 서 있는 듯한 커다란 바위, 선바위가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지요. 오늘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유산청 자료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남산 꼭대기에서 인왕산 기슭까지 자리를 옮겨야 했던 이 신당의 사연을 차분히 들려 드리려 합니다.
■ 서울을 지키던 신당, 국사당은 어떤 곳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인왕산 국사당을 "무속 신앙에서 섬기는 여러 신을 모신 신당"이자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소개합니다. 1973년 7월 16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주소는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무악동)입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국사당은 굿을 할 때 나는 소리가 마을에 방해되지 않도록 인가에서 떨어진 산속에 세우는 '굿당'의 하나입니다. 지금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소유하며 굿을 하려는 무당들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언론은 전합니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기도와 굿이 이어지는 살아 있는 신앙의 공간이라는 점이 국사당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 남산의 목멱대왕에서 시작된 긴 역사
국사당의 뿌리는 남산 신앙에 닿아 있습니다. 백과사전이 인용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5년(1396) 12월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했고, 태종 4년에는 호국의 신으로 삼아 개인의 제사를 금했습니다. 그리고 비를 비는 기우제와 날이 개기를 비는 기청제를 나라의 공식 행사로 지냈다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산 꼭대기에 '목멱신사'라는 사당이 있어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국사당'이라는 이름과 무신도에 대한 언급은 조선 후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비로소 보이는데, 백과사전은 이것이 지금 국사당의 전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 말에는 나라의 제사는 끊겼지만, 궁궐 나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오고 개성 덕물산으로 치성을 가는 사람들이 먼저 이 당을 들렀다고 합니다. 궁중의 금품 목록인 '발기'에도 국사당 이름이 여러 번 나온다고 하니, 왕실과 백성 모두가 마음을 기대던 곳이었던 셈입니다.
■ 1925년, 조선신궁에 밀려 인왕산으로
국사당의 운명이 크게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입니다. 일제는 남산에 일본 신도의 신사인 조선신궁을 세웠는데, 백과사전은 "이보다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결과 국사당은 1925년 남산 꼭대기를 떠나야 했습니다.
새 자리로 인왕산 기슭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이곳이 풍수상 명당이고, 지금은 무속의 신으로 모셔지는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국사당'이라는 이름도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전할 때 건물을 해체해 옛 재료를 그대로 옮겨 원형에 가깝게 다시 지었다고 하니, 나무 한 조각 한 조각에 남산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서울시 시민기자 보도도 원래의 재료를 그대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 아치형 대들보와 맞배지붕, 소박하지만 단단한 집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양 끝의 칸은 옮겨 온 뒤 새로 더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 칸마다 네 짝의 여닫이문이 달려 있고,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얹었습니다. 내부는 세 면의 벽에 무신도를 걸고, 마루에는 제상을 차리고 굿을 하는 공간을 두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국사당이 영조·정조 때의 건축 기법으로 지어진 원래 건물을 그대로 복원했으며, 구조는 간결하지만 목재 짜임이 튼튼해 목수의 솜씨가 돋보인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안쪽 대들보가 아치형으로 휘어진 점이 특이하다고 하지요. 다른 당집보다 건물이 견고하고 많은 무신도를 볼 수 있다는 점도 국사당의 가치로 꼽힙니다.
■ 태조부터 최영 장군까지, 국사당의 무신도
국사당 안의 그림들은 따로 '국사당의 무신도'라는 이름으로 1970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무신도 21점과 무당의 거울인 명두 7점, 모두 28점이며, 무신도 가운데 12점은 조선 말기에 한 사람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모두 비단에 채색한 뛰어난 그림입니다.
그림에 담긴 신들의 면면이 아주 다양합니다. 태조(아태조) 3점과 태조비 강씨부인, 천연두와 관련된 호구아씨와 별상, 용왕대신과 산신, 예능의 신 창부씨, 무학대사와 나옹, 점술과 관련된 곽곽선생, 단군, 삼불제석, 칠성님, 군웅대신, 민중전, 최영장군이 각 1점씩 모셔져 있습니다. 왕과 승려, 장군과 왕비, 산과 바다의 신이 한 방에 함께 있는 모습은 한국 무속이 얼마나 넉넉하게 여러 믿음을 품어 왔는지 보여 줍니다. 백과사전도 이 무신도들이 무속의 복합적이고 풍부한 신 관념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 선바위와 '서울' 이름에 얽힌 전설
국사당 바로 위의 선바위는 생김새가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 참선의 '선(禪)'자를 따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이야기,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자식 없는 사람이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해서 작은 돌을 문질러 붙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고, 그래서 '붙임바위'라고도 부릅니다. 국사당이 그 곁으로 옮겨 온 뒤로 선바위 신앙은 무속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하지요. 선바위는 1973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국가유산포털에는 2024년 7월 11일 해제일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재미있는 전설도 있습니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성 안에 넣자고 했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자고 했는데, 고민하던 태조가 눈 내린 인왕산을 보니 성 안쪽 눈만 녹아 있어 그 경계를 따라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선바위는 성 밖에 남게 되었고, 무학대사는 "이제 중이 선비의 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게 되었다"며 탄식했다고 전합니다. 눈 울타리, 곧 '설울'이 '서울'이 되었다는 민간 어원설도 이 전설에서 나왔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이야기를 고려의 불교와 조선의 유교가 엇갈린 시대를 보여 주는 전설로 풀이합니다. 어디까지나 전설이지만, 바위 하나에 도시의 이름과 역사가 얽혀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 찾아갈 때 지켜 주시면 좋은 마음가짐
국사당은 지금도 굿과 기도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찾아가신다면 굿이나 기도가 진행 중일 때는 조용히 지켜보고, 촬영은 조심스럽게 해 주세요. 남산 꼭대기에서 밀려나 인왕산 기슭에 새로 뿌리내린 지 100년이 넘은 이 작은 집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을 기댈 곳을 지켜 왔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가을 단풍이 물드는 요즘,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다가 잠시 들러 그 오랜 시간을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왕산 국사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97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당의 무신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35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바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715 , 국가유산포털 「인왕산 국사당」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481100280000 , 국가유산포털 「선바위」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441100040000 , 국가유산청 월간 국가유산사랑 「믿음의 장소, 인왕산 선바위와 국사당」 https://www.khs.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1008&nttId=81546&mn=NS_01_09_01 , 내 손안에 서울 「'서울'이란 이름, 여기서 나왔다고?」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13409 , 그린경제 「일제의 조선신궁에 쫓겨온 인왕산 국사당」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9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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