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모든것

바리공주(바리데기) — 버려진 일곱째 공주가 망자의 저승길을 밝히는 무조신이 되기까지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굿판에서 무당이 장구를 세워 두고 방울을 흔들며 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돌아가신 분을 저승으로 곱게 보내 드리는 굿에서 빠지지 않는 그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바리공주', 지역에 따라 '바리데기'라고도 불리는 여신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지만 끝내 부모를 살려 내고, 그 뒤로 죽은 이의 넋을 저승길로 안내하는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오늘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바리공주」·「무조신」 항목과 학술 논문, 그리고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바리공주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 보겠습니다.

■ 바리공주는 누구일까 — 망자를 저승으로 이끄는 신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바리공주」는 망자천도굿, 곧 돌아가신 분의 넋을 저승으로 보내는 굿에서 부르는 장편 서사무가(이야기로 된 무당의 노래)입니다. 한국 무속에서 바리공주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령으로 알려져 있어서, 망자가 저승에 가려면 바리공주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굿에서는 바리공주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 왜 이 신이 그 자리에 오시는지를 밝힌다고 합니다.

부르는 자리는 지역마다 다릅니다. 서울 진오기굿에서는 「말미거리」, 호남 씻김굿에서는 「오구풀이」, 동해안 오구굿에서는 「발원굿」에서 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름도 서울에서는 '바리공주', 호남과 동해안에서는 '바리데기' 또는 '비리데기'라 하고, '오구풀이', '칠공주'라는 다른 이름도 전합니다. 백과사전은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높은 역할을 생각하면 '바리공주'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무가는 섬 지역과 황해도굿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 버려진 일곱째 공주의 긴 여정

전국에서 채록·보고된 「바리공주」는 100여 편에 이릅니다. 지역마다 세부는 달라도 줄거리의 뼈대는 같습니다. 왕과 왕비가 혼인해 딸만 연이어 낳고, 일곱째도 공주가 태어나자 그 아이를 버립니다. 세월이 흘러 부모가 큰 병에 걸리고, 그 병을 고칠 약이 먼 곳의 약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섯 언니는 저마다 핑계를 대며 길을 나서지 않지만, 버려졌던 막내 바리공주만은 약수를 구하러 떠납니다. 약수를 지키는 이를 만나 정해진 대가를 치르고, 마침내 약수를 가지고 돌아와 부모를 살려 내지요.

서울 진오기굿의 바리공주 무가를 분석한 한 논문은, 바리공주가 '다음 해에 혼인해야 아들을 얻는다'는 조언을 듣지 않고 혼인한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나 곧바로 버림받았고, 부모가 병들자 신하와 언니들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홀로 길을 떠나 무장승을 만나 일곱 아들을 낳고 약류수를 구해 돌아와 부모를 구했다고 정리합니다. 「무조신」 항목에도 저승으로 간 바리공주가 무장신선과 가약을 맺어 아들 일곱을 두었고, 생명수와 불사약을 구해 와 이미 숨진 부모를 소생시켰다는 줄거리가 실려 있습니다. 상여 행렬과 마주친 딸이 그 앞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듣는 이의 마음을 오래 붙잡습니다.

■ 무당의 조상신, 무조신이 된 이유

바리공주는 '무조신(巫祖神)', 곧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로 모셔지는 신격으로도 유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조신」 항목은, 되살아난 왕이 바리공주에게 소원을 묻자 '만신의 인위왕', 곧 무당이 되겠다고 해서 무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앞의 논문도 바리공주가 공주의 지위를 되찾기보다 무속인의 삶을 택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모든 무당이 바리공주만을 조상신으로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항목은 처용랑, 법우화상, 제주의 무조 삼형제, 말명할머니, 계면할머니처럼 내력 이야기를 지닌 무조신이 여럿 있고, 무조신은 정해진 하나가 아니라 무당 각자의 성격과 맞물려 모셔지기 때문에 여러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바리공주는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 지역마다 다른 바리공주 — 엄숙함과 흥겨움 사이

백과사전은 바리공주 무가를 크게 북한본, 중서부본, 동해안본, 호남본으로 나눕니다. 서울·경기·충청의 중서부본은 여섯 언니가 태어나는 장면을 되풀이하고, 버려진 아기를 거두는 '비리공덕 할아범'과 '비리공덕 할멈'이 나오며, 약수 지킴이 무장승을 만나 천생배필이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망자를 인도하는 바리공주의 모습에 무게를 두어 의례의 엄숙함이 강하고, 그래서 이를 기본형으로 봅니다.

동해안본은 놀이의 흥이 두드러집니다. 약수 지킴이로 '동수자'가 나오고,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난 바리공주가 여성임을 눈치챈 동수자가 이를 드러내려 애쓰는 장면 같은 유희적 대목이 발달해 길게 늘어난 확장형입니다. 호남본은 약수를 구하러 갈 때 남장을 하지 않고 줄거리가 비교적 짧은 축소형이며, 북한본은 바리공주의 부모가 하늘에서 귀양 온 존재로 그려지고 약수를 구해 온 바리공주가 죽는 결말이 있어 변이형으로 분류됩니다. 같은 이야기도 그 땅의 굿과 음악에 따라 이렇게 다른 옷을 입는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 효와 저승관을 담은 이야기, 오늘의 콘텐츠로

백과사전은 바리공주 무가에 한국인의 내세관·영혼관·저승관이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저승이 땅 아래 수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세계에서 옆으로 걸어가면 닿는 곳처럼 수평으로 그려진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합니다. 또 버림받은 딸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에는 효의 관념이 드러나는데, 왕후가 된 뒤 울기만 하던 심청과 달리 바리공주는 상여를 보자 남편과 자식을 두고 달려가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비교합니다.

이 오래된 이야기는 지금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동화와 포털 웹툰으로 여러 번 만들어졌고, 소설가 황석영은 2007년 창비에서 장편소설 『바리데기』를 펴냈습니다. 당시 한겨레와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소설은 식량난 무렵 북한을 떠난 소녀 '바리'가 중국을 거쳐 영국 런던으로 가는 여정에 생명수를 찾아 서천으로 떠나는 바리 설화를 겹쳐 놓았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 자료를 보면 『Princess Bari』라는 영어판을 비롯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 맺으며 — 버려진 아이가 가장 먼 길을 걸었다는 위로

바리공주 이야기가 오랫동안 굿판에서 불려 온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가장 작고 버려졌던 이가 가장 먼 길을 걸어 생명을 구해 오고, 끝내는 떠나는 이의 손을 잡아 저승길을 밝혀 준다는 이야기는,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혹시 진오기굿이나 씻김굿 공연, 무형유산 시연을 볼 기회가 있다면 「말미거리」나 「오구풀이」에 귀 기울여 보세요. 장구와 방울 소리 사이로 천 년을 건너온 바리공주의 발걸음이 들릴지도 모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바리공주」(홍태한 집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047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조신」(김헌선 집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241 , KCI 「서울굿 바리공주 무가 고찰」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673111 , 한겨레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 책으로」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221540.html , 경향신문 「새 장편소설 '바리데기' 출간한 황석영」 https://www.khan.co.kr/article/200707111738121 , 한국문학번역원 디지털도서관 「바리데기」 https://library.ltikorea.or.kr/originalworks/10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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